■철도관사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6 - 정종필(77세)

조곡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지역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2011년부터 마을 유래 찾기 사업을 시작하였다. 2011년 첫 사업으로 조곡동 철도관사를 주목하기 시작해 철도관사마을과 관련한 자료를 발굴하고 철도에 종사했던 거주 주민으로부터 사진자료 등을 발굴하여 ‘우리마을 이야기 찾기 - 조곡동 철도관사’라는 소중한 책자를 발간하였다.

이 소중한 작업에 철도 퇴직자들의 많은 협조가 있었고, 특히 순천지방철우회 회원이자 조곡동 주민자치위원회 고문인 정종필(사진‧77) 씨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정종필 씨는 ‘철도관사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5’의 주인공인 오태례 씨의 남편이기도 하다. 여천군 화양면이 고향인 그는 27세에 철도에 들어와 33년 동안 철도생활을 하였다. 퇴직한 후에는 조곡동을 위해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며 마을을 위해 작은 발걸음을 쉬지 않고 있다.
 

33년, 적은 세월이 아녀. 잠이나 실컷 자보고 싶었어.

스물일곱 적지 않은 나이에 철도청 순천기관차사무소에 입사한 정종필 씨는 33년 동안 철도에서 근무했다. 2년을 더 근무할 수 있었음에도 59세에 퇴직을 했다고 한다.

▲ 정종필씨는 운전대 앞에 놓인 가족사진(1971년도)을 보며 잠을 쫓았다고 한다.
“생각을 해봐. 33년 세월이 적은 세월이 아녀. 기관사들은 잠을 보통사람들같이 못 자. 새벽 한 시에 일어나서도 교대하고 그러니까. 사람이 중노동을 해도 그날 저녁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몸이 회복이 되는데, 잠을 제때 못자는 게 젤로 나쁜 거여. 그 당시 철도 근무하면서 사고 없는 사람은 2년 연장을 해. 나는 퇴직하고 편안하니 쉬고 싶어서 연장을 안했어. 잠이나 실컷 자 보고 죽자 해서. 애들도 결혼 다 시키고, 연금 나오면 둘이 먹고는 살잖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펴낸  ‘우리마을 이야기 찾기-조곡동 철도관사’ 책자를 보면 1971년에 찍은 가족사진이 나온다. 정종필 씨는 이 사진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한다.

“요거를 운전대 앞에 걸어놓고 보면서 운전을 해. 새벽 두시 세시면 잠이 오잖아. 잠이 올 때는, 요 사진 딱 보면서 ‘자면 죽는구나’ 하면서, 잠을 깨고 그랬어.”

33년 동안 철도인으로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기관사가 새벽 2~3시 출근 할 때도 많잖소. 내가 33년 무사고로 퇴직해서 근조훈장도 받았는데, 우리가 힘들어도 가정을 위해 국가를 위해 무사고로 목적지까지 갔다 오면 제일 좋고, 나갈 때도 목적지까지 무사고로 갔다 와야겠다,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그랬지. 아무 탈 없이 운전하고 가정에 들어오면 가족들이 반겨주면 좋고, 무사고로 33년 기나긴 세월 퇴직하니까 그걸 생각하면 기분 좋고 그랬지.”
 

순천 관사가 제일 규모 크고, 지리적으로 좋아

조곡동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전국에 있는 철도관사를 현지 답사한 정종필 씨는 순천 철도관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 5개 철도국이 있었단 말이여. 그 뒤로 철도청으로 이름이 바뀌었지. 전국에 철도청 관사를 우리가 가서 답사를 했는데, 헬기 답사도 했는데, 순천 철도청 철도관사가 제일 크고 거대하드라 이거여. 다른 데는 형편없이 규모가 작고, 호수(戶數)도 적고 그래. 순천철도관사가 제일 위치도 좋고, 규모도 크고, 지리적으로 좋고 그래. 그래서 조곡동 자치위원으로 있으면서 철도관사를 철도관광지로 개발을 해보자 건의를 해서, 그것이 착수가 돼서 조곡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책도 펴내고, 현재도 관광지로 만들자고 추진 중에 있을 거여. 나는 이제 (주민자치위원) 봉사활동을 그만 두고, 나 대신 집사람이 조곡동 자치위원을 맡아서 하고 있고, 지금 주민자치위원들이 잘 추진하고 있어.”

2013년엔 철도문화마을만들기 사업이 추진되고, 2014년부터는 시비와 국비가 투입되어 관사도 몇 채 매입해서 복원하는 등의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는 말에 정종필 씨는 누구보다도 기뻐하신다.

“현재 철도에 근무했던 사람들이 한 70% 정도는 철도관사에서 살고 있을 거야. 일반인들이 많이 들어왔긴 했는데, 현재에도 철도 근무했던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까 참고가 많이 되지. 일본사람들이 살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집이 아직은 몇 채 있으니까.”
 

조곡동민을 위해 소소한 일이라도 하는 게 보람

정종필씨는 퇴직 이후 조곡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을 했고 2012년에는 고문 역할을 하다가 올해 그만 두셨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봉사활동하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주민 자치활동 하는 동안에 어떤 행사가 있을 때 민원처리, 교통정리, 청소같은 것도 하고 많이 했지. 광주나 부산 같은데 주민자치가 어떻게 활성화 됐는가 가서 보고, 설명도 듣고, 우리가 본받을 건 본받고 이렇게 많이 했지. 주민자치위원회 활동하면서 보람은, 조곡동과 동민을 위해 소소하지만 청소도 많이 하고, 동순천 쪽으로 둑실 가는 데 가면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장미꽃밭을 만들어 놨어요. 아조 좋게 해 놨어. 내가 그 쪽으로 지나가면 일부러 들르고 그래. 우리가 한 거니까.”

철도관사마을에 40년 째 살고 있는 정종필 씨에게 마을에 대한 좋은 기억을 물어보았다.

“매일 20~30년을 봉화산을 빠짐없이 다녔어. 지금은 더우니까 안다니지만. 건강은 하늘이 도와준 덕택으로 보고, 성질도 낙천척으로 살고, 동네가 좋잖아. 여기 오래 살았지만, 퇴직하고 나서 봉사활동하면서 동네 구석구석 잘못된 점, 고쳐야 할 점 있으면 매월 자치위원회 회의에서 건의하고 동장에게 건의해서 고칠 건 고치고, 하다못해 소소한 가로등 하나라도 말이여. 그 전에는 무심코 보냈어도 내가 자치위원 고문역을 맡고 하면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지. 세심히 봐서 고칠 건 고치고. 그런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정종필 씨와 아내 오태례 씨는 자식들 결혼시키고 나이 들어서 조곡동을 위해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그냥 좋아서라고 한다. 그들의 소소하지만 부지런한 발걸음 속에, 철도관사마을이라는 근대의 역사가 오늘날과 미래의 가치 있는 자산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부부의 마음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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