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위니』/ 코키 폴 그림, 밸러리 토머스 글, 김중철 옮김 / 비룡소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아이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부모다. 물론 집 밖을 나가 만나게 되는 여러 관계들, 특히 학교라는 사회에 진입하게 되면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보이지 않는 역학관계는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아이들의 삶을 존중하면서 나와 전혀 다른 우리 아이와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 부모의 희생이나 아이들이 부모에게 맞추는 일방적인 삶이 아니라, 부모나 아이들 모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행복해 질 수는 없을까?

마녀 위니는 숲 속 까만 집에서 산다. 깔개도 까맣고, 의자도 까맣고, 침대도 까맣고, 담요도 까맣고, 이불도 까맣다. 심지어 목욕통까지도 까맣다. 까만색 집 내부는 어두침침하고 칙칙하지 않을 뿐더러 정리정돈도 잘 된 세련된 모습이다. 소품 하나 하나까지 취향 분명하고 개성 뚜렷한 마녀 위니는 매력적이다. 그래서인지 위니는 예쁘지도 귀엽게 생기지도 않았지만 우아하게 차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면 유럽 민담에 나오는 추하고 심술궂은 노파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랑스런 캐릭터다. 숲 속 저택에 혼자 살면서 공부하고 실험하며 마녀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마술지팡이도 있으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테고 외롭거나 지루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위니의 유일한 가족은 까만색을 좋아하는 위니의 취향에 딱맞는 까만색 고양이 윌버 뿐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연두빛 눈을 가진 윌버는 잠자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고양이다. 그런데 고양이 윌버가 까만색인게 말썽이다. 윌버가 두 눈을 감으면, 위니는 윌버를 알아볼 수 없다. 윌버에게 걸려 심하게 넘어진 어느 날, 이대로는 안되겠다 생각한 마녀 위니가 요술 지팡이를 높이 들고 주문을 외우자, 윌버는 연두색 고양이가 된다. 이제 마녀 위니는 윌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있다. 윌버가 올라가서는 안 될 자신의 침대에서 자는 것까지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위니는 윌버를 바깥 풀밭으로 쫒아낸다.

윌버에게 화가 난 위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잘 정리된 나의 공간에서 걸려 넘어질 일 따위는 없을텐데 아무데서나 잠을 자는 윌버에게 버럭 소리도 지르고 싶었을테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그렇지만, 걸려 넘어진건 위니가 아닌가! 눈앞에 보여도 보지 못하고 주위를 살피지 못한 제 잘못이 아닌가 말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잠자고 있던 윌버 입장에서 보면 잠자다 날벼락 맞은 기분일 것 같다.

그런데 윌버를 향한 위니의 요술 지팡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연두색 눈을 가진 고양이 윌버가 풀밭에 앉아 있으면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어도 마녀 위니는 윌버를 볼 수 없었다. 윌버에게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장미 덤불 속에 처박힌 위니는 몹시 화가 나서 이번엔 고양이 윌버를 머리는 빨강, 몸은 노랑, 꼬리는 분홍, 수염은 파랑, 다리는 보라색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제 마녀 위니는 윌버가 의자에 앉아 있거나, 깔개 위에 누워 있거나, 풀밭에서 놀고 있거나, 아주 큰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있어도 볼 수 있다. 윌버에게 걸려 넘어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록달록 고양이가 된 윌버는 우스꽝스러워진 자신의 모습 때문에 너무나 슬퍼 아침부터 밤까지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하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하나 둘 소원이 불어난다. 아이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믿어 의심치 않지만, 내가 바라는대로 자라주길 하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마녀 위니처럼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며 강제하지 않더라도 아이에게 끊임없이 부모의 바람을 요구하게 된다. 아이들은 최대한 부모의 바램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때론 자신만의 삶을 위해 부모와의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그제서야 부모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마녀 위니는 걱정이 되었어요. 위니는 윌버가 좋았기 때문에, 윌버가 슬퍼하는 게 싫었어요.”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 윌버를 바라볼 수밖에 없고, 슬퍼하며 윌버를 걱정하는 위니에게 혼자 마시는 차는 더 이상 맛도 없다. 마녀 위니는 마침내 윌버를 원래 까만 고양이로 되돌려놓고, 까만 집은 빨간 지붕에 빨간 문이 달린 노란 집으로 만든다. 의자도, 깔개도, 침대도, 이불과 담요도 목욕통도 더 이상 까만 것은 없다. 이제 고양이 윌버가 어디에 있든 마녀 위니는 윌버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윌버가 본래 까만 고양이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만큼 주목해야 할 것은 알록달록 멋진 집을 만든 것이 위니 혼자 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까만 집을 바라보고 서서 요술 지팡이를 흔드는 위니와 함께 까만 고양이 윌버가 함께 서 있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보는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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