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마이키가 한국에 온 지 5년이 되었다. 그 사이 결혼도 했다. 한국에 보금자리를 만들게 된 푸른 눈의 새신랑 마이키는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신혼여행 떠나기 직전의 신혼부부를 만났다.

▶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친구들은 Mickey라고 부르는데 본명은 Michael Hennesy이다. 내 고향은 뉴욕이다. 체육을 전공해서 체육 보조교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한국(순천)에서 원어민 강사를 하는 친구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시아문화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고, 젊을 때 집을 떠나 외국생활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국에 온 것은 그렇게 단순한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시작했다.

▶ 한국행을 결정할 때 가족들의 반응은?

걱정을 많이 하셨다. 특히 할머니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

나는 조부모님과 사이가 돈독하다. 아버지는 뉴욕교도소에서 교도관을 하시고, 어머니는 간호사이다. 아버지는 하시는 일과 달리 아주 다정한 분이셨다. 하지만 무슨 사연인지 내가 아기였을 때 이혼을 하셨고, 지금의 어머니와 재혼하셨다. 친어머니가 그리운 것은 아니었지만 새어머니는 나를 엄격하고 고지식하게 대했다. 조부모님은 어린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항상 보살펴 주셨고 방학이 되면 조부모님 댁에서 두 달 씩 살다오곤 했다.

그래서 한국에 올 때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이 할머니이다. 하지만 다정한 아버지는 나의 결정을 믿고 응원해 주셨다. 한국에 오기 전에 새어머니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새어머니는 “마이키 미안해. 내가 그때는 많이 어렸어. 그래서 너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어” 어머니에게 서운했던 많은 일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국으로 왔다.

▲ 마이키의 미국에 있는 가족들. 왼쪽부터 마이키와 할아버지, 누나, 아버지, 누나. 고향의 그들은 마이키의 한국생활을 항상 응원한다.

▶ 마이키에게 순천은 어떤 곳인가요?

나는 대도시 뉴욕에서 살았다. 정말 거대한 곳이다. 많은 사람과 다양한 일이 북적거리는 곳이다. Melting Pot(끓고있는 용광로)같은 그곳은 조용할 날이 없다. 나는 어릴 때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었다. 순천이 그런 곳이다. 깨끗하고 고요하다. 나에게 이 도시는 휴식 같은 곳이다. 가끔 고향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운동을 좋아해서 사회인 야구단(삼화메디컬 사회인 야구단)에 가입했는데 운동하는 친구들과 지내다보면 외로울 틈이 없다. 특히 사랑하는 아내 배소현이 있기 때문에 매일 행복하고 즐겁다.

▲ 삼화메디컬 사회인 야구단, 마이키가 낯선 한국에서 외로움을 잊게 해준 모임이자 친구들이다.

마이키의 부인 배소현 씨는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마이키를 만났다. 한국말이 서툴러 좌충우돌하던 그를 통역하다가 인연이 되어 지금은 부부가 되었다. 소현 씨에게는 항상 밝고 건강한 웃음을 주는 남편이 고마울 따름이다.

배소현 씨에게 물었다.

▶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은 없는가?

마이키는 매우 긍적적인 사람이다. 그는 처음 보는 한국인들 앞일지라도 어색할 때면 “와우 나이샷! 이 코쟁이놈 ! 양키 고 홈! 반가워” 라고 스스로 디스를 해대며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친구를 좋아하고 한국인의 정서를 존중하기 때문에 특별한 갈등은 없다. 점수를 매긴다면 99점 정도 주고 싶다. 1점의 감점은 어쩔 수 없는 서양인 특유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끔 드러낸다. 큰일은 아니지만 작은 일을 상의 없이 혼자 결정할 때가 가끔 있다. 서운하지만 존중하려고 한다. 하지만 애정표현 만큼은 부족함 없이 잘 해준다. 시부모님 또한 애정 표현이 넘치신다. “소현아 사랑해” 라는 말씀을 한국말로 계속 해주신다. 본받아야 할 그들의 습관인 것 같다.

마이키는 원래 한국에 정착할 생각이 없었다. 짧게 일해 보고 번 돈으로 아시아 전역을 여행 하는 것이 목표였다. 소현 씨를 만나게 된 후 그녀를 떠날 수 없어 한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 결혼할 때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에는 그냥 외국인 친구였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언어소통에 문제가 없어 더 빨리 친해진 듯하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았다. 떠날 시간이 정해진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막연한 두려움으로 주저하고 있을 때 그가 한국에 정착하겠다고 말했다. 나를 위해서 고향과 가족,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남아주었다. 반대하실 줄 알았던 친정 부모님께서 예상외로 허락을 빨리 해주셔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결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과정에 다른 점이 있었다. 친정 부모님과 달리 미국의 시부모님은 자식의 결정을 전적으로 믿고 동의해주셨다.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축하할 일이라며 같이 기뻐해주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녀의 일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과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자식을 완벽하게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며 본인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도록 지켜봐 주는 것은 분명히 한국에 없는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인 것 같다. 그와 나는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가끔은 외국인 남편에 대한 섭섭한 편견에 부딪힐 때도 있지만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 일이 두려웠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여느 한국인들처럼 가장이 되어 열심히 살고 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저축해서 집도 사야하고, 아이가 생기면 한국식으로 교육하려 한다. 그는 한국 시민이고 한국인의 사위 ‘한 서방’이 되었다.

▲ 마이키(Michael Hennesy)는 광양중학교 원어민강사로 일한다. 아내 배소현 씨와 지난주 일요일에 결혼식을 올리고, 이제 한국의 사위‘한 서방’이 되었다.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참 많이 닮았다.

마이키와 소현 씨는 4년 전 6월 25일 만났고, 2016년 6월 25일에 결혼했다. 인연이라는 것은 알 수 없이 질기고 묘한 것이다. 뉴욕과 순천은 참 멀리 떨어져 있다. 실타래를 얼마나 풀어야 그곳까지 갈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숨겨진 보물을 용하게도 잘 찾아냈다. 서로 소중한 보물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예쁘게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어렵게 시작한 그들이 이곳에서 잘 정착해서 건강한 시민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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