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 김배선 향토사학자
선암사의 오른쪽 개울 건너편 약 150m지점의 언덕에는 약사여래조각상과 신비한 형상의 약사석이 있다. 선암사의 축구장 안쪽 언덕 약 40m 지점으로 큰절에서 개울을 건넌 대웅전으로부터 동쪽의 옛 독락당 터의 옆이다.

이곳에 약사여래와 약사석이 조성되어 있는 것은 약사여래가 중생들의 온갖 병을 치료해주는 동방을 상징하는 부처이므로 동쪽에 바위가 있는 이곳이 딱 들어맞는 장소였기 때문일 것이다.

약사여래와 약사석은 잡나무와 조릿대 속에 묻혀있었는데, 2006년 가을에 선암사 스님들이 발견하여 주위를 깨끗하게 정비한 후 경배를 드리고 있다. 이곳에는 2~3m 높이의 바위가 모여 있는데, 그 중 앞쪽에 있는 약 2m 높이의 바위 앞쪽에 약사여래좌상이 음각되어 있다. 그 뒤에는 얼굴과 몸체로 구성된 약사석이 옆으로 누워 선암사를 바라보고 있다.

▲ 약사여래상
▲ 약사석

약사여래상은 거친 바위에 마치 민가에서 만들어 놓은 불상처럼 세련미가 없이 단순한 모양이다. 특이한 점은 왼쪽에 같은 모양의 약사여래를 80% 정도 조각하다가 그대로 두고, 정면에 다시 조각을 한 것인데, 면적이 좁은 느낌도 있지만 아마 선암사를 향하게 제작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약사여래불상의 오른쪽 상단에는 ‘藥師 光武八年 甲辰’이라는 연호가 조각되어 있다. 조성연대가 1904년임을 알려주고 있으나 약사석과 같은 시기에 조성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 약사석 얼굴

약사석 중에서도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바위는 길이가 약 70cm이고, 몸이 조각되어 있는 바위는 약 1.2m 크기의 바위가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지금의 약사석을 보면 자연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제멋대로 깨트려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은 느낌도 들지만 약사석의 얼굴은 화강암의 굴곡의 선과 무늬가 눈, 코, 입, 머리의 형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눈은 감고, 입은 다물어 깊이 사색하는 것 같은 모습은 그저 신비할 따름이다. 자세히 보면 의도적인 작업으로 그와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굴곡만으로 그와 같은 표정을 그려내기가 쉽지 않고, 주름살 같은 돌의 무늬가 조화를 이루어 결정적인 느낌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해머로 맞아 함몰된 것처럼 보이는 이마(숨골)에서는 생의 고통이 느껴지고, 코를 보면 올빼미처럼 보이기도 한다. 왼쪽의 아래 눈에는 깊은 굴곡이 있고, 오른쪽 위에는 약간 도드라진 선이 있는데 사람 얼굴의 인중처럼 보인다. 그 주변에 약간 패인 곳은 양각의 역할을 하여 날을 세워 코처럼 보이기도 한다.  

▲ 존트라볼타
입은 안면의 중심선을 거슬려 어린아이가 눈사람에 막대를 제멋대로 박아 삐뚤어지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옆으로 누워 고뇌하는 듯한 표정은 놀랍다. 턱처럼 보이는 곳의 짧은 수직선은 ‘턱의 대명사’ 미국의 배우 ‘존트라볼타’를 떠올리게 한다.

어느 부위보다도 압권인 것은 두 눈의 표정이다. 가늘게 뜨고(감고) 있는 왼쪽 눈은 깊은 명상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힘을 주어 보일 듯 말듯 찡그린 오른쪽 눈은 인간들의 고뇌를 모두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눈의 표정을 만드는 핵심은 조각이 아니라 돌 자체가 가진 선과 무늬라는 데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느 한 부분에서도 대칭은 찾아볼 수 없고, 완전 자유분방한 모양이지만 전체적인 조화는 심오(深奧)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만약 약사석의 모양이 계획에 따라 조각되었다면 이는 사람이 아닌 신의 작품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을 보면 머리돌을 발견한 뒤 그 돌에 어울리는 몸돌을 가져다가 약사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 추정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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