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학섭
대대교회 목사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는 자매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하련다. 친절에 대한 글감으로써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아서다. 2년 전 그녀가 고국에 방문하였을 때 짧은 시간을 함께 했었다. 난 본래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아닌데 유독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만큼 감동을 받았다.

그녀가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 보던 날의 추억이다. 면접하기 위해 일찍이 면접장에 도착하였다. 면접을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출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부분이 명문대학원 출신들이었고 자신만 고졸출신임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아무도 그녀와 함께 해주는 사람이 없어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점심때가 되어 다시 면접이 시작될 때까지 삼삼오오 모여 얘길 나누었지만 자신은 혼자였다. 때마침 한 남자 직원이 커피를 나르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커피 나누는 일을 도와주었다. 말동무도 없고 무료하게 있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선택한 일이었다.

오후에 다시 면접이 시작되었고 자신의 차례가 되어 면접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뜻밖에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전 커피를 나르는 남자 직원이 면접관의 총책임자였다. 그녀는 대학원 출신들을 따돌리고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렇다고 합격이 꼭 커피 나르는 일을 도와준 친절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1차 필답시험을 치를 때에도 친절하게 살아온 이력이 시험문제를 푸는데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시험문제는 공대출신이 아니고는 도무지 풀 수 없는 전문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고졸출신이면서도 그 문제를 가볍게 패스했다. 한 때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한 회사에서 익혀 두었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시험문제로 출제되었던 것이다. 결국 일상에서 베푼 작은 친절이 그녀의 취업문을 활짝 열어준 셈이 되었다.

인생이란 어쩌다 일어날 수 있는 우연한 기적은 없다. 기적이란 땅을 파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심지 않는데서 나오는 행운이 아니다. 평소에 삶 속에 쌓아둔 친절과 선한 일들이 기적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친절은 정말 신사적인 삶이다. 친절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우리 곁에 찾아온다.

필자도 작은 친절함 때문에 누렸던 큰 축복이 있다. 어떤 글을 읽고 느낀 바가 있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 글쓴이에게 e-메일을 보냈다. 격려하는 말 몇 줄을 쓴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다음날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두 사람의 만남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부러 만나기 위해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정확하게 말이다. 그 분은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전폭적으로 도와주었다. 당시 내게 무거운 일이었지만 아주 쉽게 해결해 주었다. 편지 쓰기 위해서 2-3분 정도 소요된 작은 친절치고는 많은 보상을 받았다.

친절이란 친절을 제공받은 사람이 행복해지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 나의 친절한 한 마디의 말이 누군가를 온 종일 기분 좋게 해주었다면 큰 보람이 된다. 나의 친절한 작은 행동이 이웃을 기쁘게 하고, 우리 사회를 밝게 해주는 동력이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 이렇게 친절은 자신을 포함한 이웃과 사회를 밝게 하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

작은 친절이 기적이 되어 내게 다시 찾아온 사연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친절한 한 마디 말 때문에 결혼한 부부도 있고, 좋은 친구를 얻기도 한다. 친절은 우리에게 취직자리도 마련해 준다. 아직까지 친절이 우리를 해하거나 실망시킨 일은 없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절한 말을 건네 보자.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어보자. 친절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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