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청년들이 첫 월급으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부모님께 용돈 드리기라고 한다. 예전에는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 내의를 사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첫 월급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청년들의 취업이 어렵다고 하니 선물 고민은 행복한 고민일 것이다.

순천시 연향동에 사는 은파는 얼마 전 첫 월급을 받았다. 바늘구멍을 뚫고 대학병원에 입사한지 두 달 경력의 신규 간호사이다. 행복한 선물고민을 했던 그도 취업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내기 직장인의 하루를 따라가 보았다.

 

▶ 간호사를 평생 직업으로 결정한 계기가 있었나?
부모님이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셔서 어릴 때부터 봉사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 나는 어른이 되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하겠다고 늘 생각했다. 게다가 어머니께서 간호사이시니 자연스럽게 의료계통의 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간호학과에 진학을 하였다. 현실에 부딪히기 전 어린아이들은 누구든지 나이팅게일이나 슈바이처가 되는 착한 꿈을 꿀 것이다. 하지만 전공 공부를 하고 실습을 하면서 많은 생각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간호사를 나이팅게일의 헌신적인 모습에 빗대어 백의의 천사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천사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아름다운 미소로 친절과 헌신 베풀기를 강요하는 그런 의미일 수도 있다. 간호사도 분명 천사가 아니라 많이 공부해야 하고 긴장해야 하는 전문 직업일 뿐이다.

▶ 취업준비는 어땠나?
쉽지 않았다. 고3때는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될 것 같았는데, 역시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있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대학병원에 원서를 쓰기 시작하고, 원서-필기시험-1차 면접-2차까지의 과정을 거친다. 각각의 과정을 마칠 때마다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데,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원했던 병원에 입사를 실패한 후에는 ‘그냥 집 가까운 순천에서 취업할까?’ 라는 고민도 했지만 여섯 번의 도전 끝에 지금의 대학병원에 합격하였다. 남들은 졸업하기 전에 합격했으니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합격이 다는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 첫 사회생활이고 이 길이 나에게 정말 맞는 일인지는 더 고민 해볼 일이다.

▶ 취업난을 통과 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직을 꿈꾸는가?
해마다 대학에서 많은 간호학과 학생이 졸업하고 간호사로 배출된다. 안정적인 직업처럼 보이지만 간호사만큼 이직률이 높은 직업군도 없을 것이다. 이직률이 높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3교대 근무도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여전히 수험생들처럼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신규 간호사는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후 승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과장–부장이 된 분들은 마치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우선 올해 나의 목표는 버티기, 그만두지 않기이다. 그만두지 않고 버텨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우선 나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함이고, 두 번째 이유는 학자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졸업과 동시에 학자금 빚쟁이가 되어 있다. 이제 취업을 했으니 그 빚을 갚아야 한다.

▶ 지금까지 일하면서 인상적인 환자가 있나요?
나는 의료인이며 직업인이다. 환자는 나의 보호를 기다리는 고객이기 때문에 나의 감정을 절제하며 전문가답게 행동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역시 신입 티를 많이 낸다. 주사 바늘이 아프다고 투정부리는 환자는 밉고, 잘 참아주는 환자가 좋다. 가끔 고맙다고 인사해주는 환자를 만날 때는 마음이 움직인다. 인지상정에서 벗어나야 진짜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서투르다.

나는 혈액종양내과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말기 암 환자를 많이 만난다. 최근에 나와 나이가 비슷한 젊은 종양환자를 돌보고 있는데, 그는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고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를 보면 안타깝다는 말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 또한 나처럼 진학과 취업을 고민하고 미래를 고민했을 터인데, 이제 그에게 미래는 없다. 실습기간 중에 임종 환자를 여럿 보았고, 그분들의 탈의를 도와준 경험이 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을 보았을 때는 마지막 길 잘 해드려야지 그 정도의 생각뿐이었고,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죽음을 기다리는 젊은 청년의 하루하루를 함께하는 일은 나에게도 짐이 된다. 우리에게 미래라는 말은 참 벅찬 단어인 것 같다.

앞으로 나는 많은 중증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임종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내 감정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며, 전문가다운 면모를 갖추고 싶다.

▶ 첫 월급으로 무엇을 했나요?
대학시절 자취를 했기 때문에 항상 용돈이 부족했다. 취업을 하고 급여가 생긴다면 우선 사치품을 거침없이 사야지 생각했다. 제일 먼저 그동안 열심히 살고 준비해 온 나에게 선물을 다 뿌리겠다고 선언도 했다. 좋아하는 시계와 운동화를 매달 지속적으로 미친 듯이 사고 싶었는데 막상 돈이 생기고 나니 싱거워졌다. 부모님과 동생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가족 회식도 하고, 지인과 이웃들에게 계속 베푸는 중이다. 심지어 엄마, 아빠의 친구들까지 내가 사는 밥을 드시겠다며 대기자 줄을 섰다. 내 첫 월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내가 번 돈으로 계산을 할 때 우쭐해지고 재미있지만, 이제 다음 달부터 가족 기부는 그만할 계획이다. 저축을 해서 빨리 학자금도 갚고 목돈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어려운 곳에 꾸준히 기부활동을 할 것이다.

▶ 10년 후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나는 이제 갖고 싶었던 시계와 운동화를 잠시 보류하고 저축을 할 것이다. 목돈이 생기면 다시 대학원 진학을 해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 실전과 이론을 많이 경험한 후에 모교(대학)에 돌아가서 강의를 하고 싶다. 10년 후를 꿈 꿀 수 있어서 지금 나는 참 좋다.
 

정은파: ○○대학병원 암 병동 신규 간호사 (경력 2개월차)

은파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3월에 취업했다. 취업재수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사를 했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탱탱볼처럼 통통 튀는 스물다섯 새내기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까? 그의 첫 월급은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이면서, 앞으로 삶에 대한 약속일 것이다. 그 약속이 차곡차곡 쌓여서 10년 후에는 은파가 꿈꾸는 곳에 서 있길 바란다. 10년 후를 꿈 꿀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에게도 아직 미래가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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