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여수YMCA 사무총장
찬란하게 피어나는 신록 속에 따뜻한 가정의 달 행사가 희망으로 이어지는 5월, 세월호에 이어 5.18의 아픔을 애써 외면할 수도 없는 5월이기도 했다. 그래서 6월을 여는 첫 칼럼만큼은 좀 더 밝고 유쾌한 내용으로 열고 싶었던 터이다.

그러나 현재 확인된 사망자만 239명이고, 추정되는 피해자 숫자는 수십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제쳐두고 그 어떤 밝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삶의 시작이요 최후의 보루인 가정 안방에서, 가장 보호받아야할 유아와 산모들이 집중적이고 무방비한 피해를, 아니 살해를 당했다.

오직 돈 벌기에 혈안인 기업과 국민의 안전에는 무능한 정부가 그 공범이다. 하지만 가해 기업들은 이런저런 핑계와 법률방패에 숨어 있을 뿐 책임질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 역시 그간 은폐와 나 몰라라 식의 면피만 하다가 사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기업에 책임을 떠넘기는데 급급하다.

결국 피해자의 고통을 대변하고 사회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나섰다. 보건단체, 소비자단체, 환경단체, 생활협동조합 등으로 구성된 단체들은 우선 가해기업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그 책임을 묻는 활동부터 시작했다.

검찰의 수사에 앞서 언론을 통한 추상적인 사과 정도로는 피해자나 국민의 분노와 불안을 달랠 수 없다. 피해자 한 사람 한사람의 피해사실에 대해 개별적으로 진상규명을 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할 시스템을 속히 구축해서 발표해야 한다. 그것이 말뿐이 아닌 진정한 사과다.

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단체들은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특히 사망자의 70% 이상을 발생시킨 다국적기업 옥시 상품이 집중대상이다. 이 기업은 독성을 알고서도 상품을 생산 유통하고, 판매초기부터 사용자들의 피해신고가 잇따랐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연구자를 매수해  연구결과를 은폐하거나 조작했으며. 로펌 김앤장을 고용해 책임을 세탁했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비열하고 부도덕한 범죄다. 차제에 옥시의 영구추방이 불가피한 이유다.

정부의 책임은 기업보다 더 중하다. 이제라도 모든 제품의 안전성에 관한 특별조사를 실시해야한다. 나아가 위험한 원료가 승인되고, 치명적인 제품이 통제되지 않은 채 유통되고,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긴 시간을 허비하고 피해자 구제와 지원을 외면한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야한다. 왜 내가 피해자를 만나야하느냐고 반문하는 환경부장관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정부의 책임규명과 조치는 요원하다. 당장 장관을 경질해 정부책임의 의지를 보여야한다.

새롭게 임기를 시작한 20대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습기살균제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  청문회를 개최하고 불거진 의혹과 명확한 책임소재를 파헤쳐 적절한 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해야한다. 제2의 안방의 세월호라 불리는 만큼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못 믿을 정부인만큼 국회차원의 철저한 조사와 입법조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검찰도 용두사미가 되어 결국 우리사회는 또 다시 안전 불감증에 면역되어가는 전철을 반복할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결코 우연하거나 단일한 사고가 아니다. 돈만 된다면 그 어떤 짓을 해도 기업 활동이라는 명분에 가려 방조되거나 심지어 장려되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이다. 차제에 돈 보다 그 위에 자리하는 가치 한 가지는 마련해보자. 최소한 돈이 최고인 천박하고 위험한 사회는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