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곡동 철도관사마을이 준비한 경로잔치


▲ 조곡동 철도관사마을에 위치한 철도노조 2층 교육실에서 100명의 마을 어르신들이 참여한 경로잔치 전경

원래 마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공동체였다. 하지만 갈수록 각박해지는 삶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예전의 마을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따뜻하고 기분 좋은 소식을 접했다.

지난 5월 9일(월) 점심시간. 조곡동에 있는 철도노조 2층 교육실은 100여 명이 넘는 마을어르신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철도관사마을 어른들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경로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교육실 옆 회의실에서는 철도관사마을 상가번영회 회원들이 준비한 음식을 담고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모든 음식은 상가번영회 회원들이 직접 만들거나 십시일반 마음을 모은 후원으로 준비했다.

윤미용실은 갑오징어회무침을, 대박식당은 새벽에 일어나 김밥 3종 세트를, 봉화산장은 삶은 닭 10마리를, 창성식육식당은 사골선물세트를, 과자와 바나나 등은 일마트에서, 주류와 음료수, 떡이며 모든 것들은 부녀회, 통장단, 주민자치위원회, 개인 등 여기저기 후원으로 준비한 것이다. 음식이나 후원을 하지 못한 사람은 제일 바쁜 시간인 점심시간에 가게를 접다시피하고 11시부터 경로잔치 자원봉사로 모여들었다.

“오메, 이 바쁜 시간에 신세대식당, 관사김치찌개, 아리아치킨도 왔네”

▲ 경로잔치를 준비한 철도관사마을 상가번영회 회원들

상가번영회 회원들은 준비하는 내내 막걸리를 한잔씩 주고 받고, 인증샷도 찍으며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이번 경로잔치는 철도마을카페 기적소리와 철도관사마을 상가번영회가 함께 준비하였다.

철도관사마을 상가번영회 회장인 대박식당 김중한 씨는 “평소 어르신들이 우리 상가를 찾아주시는데, 이런 날이라도 조금씩 정성을 모아 맛난 거 대접해 드리고 기분 좋은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힌다.


▲ 파지를 주우며 하루 몇천 원을 벌어 생활하는 어르신이 후원한 감동적인 10만원
파지 모으는 사람의 10만 원 후원

경로잔치가 열리기 일주일 전부터 철도관사마을 세 군데 경로당과 만나는 어르신들에게 소문을 낸 때문에 열두시가 되기 전에 행사장은 어르신들의 발걸음으로 꽉 채워졌다.

노래공연, 색소폰 연주, 각설이타령에 경품 추첨까지 그야말로 한바탕 축제 분위기다.

사회를 맡은 조종철 호남철도협동조합 사무국장이 아름다운 사연을 소개한다.

마을에서 파지를 모아 하루 몇 천원 벌이로 생활하는 박00할머니께서 좋은 행사에 보태고 싶다고 구깃구깃 모아온 1000원짜리 지폐로 10만 원을 보탠 사연이다. 어르신들도, 잔치를 준비한 마을 사람들도 모두 짧은 외마디 탄성을 터트렸다. 올해로 3년째인 경로잔치는 해년마다 따뜻한 사연이 더해진다.
 

이런 동네가 요즘 드물당께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상가번영회, 경로당, 부녀회, 통장단, 주민자치위원회, 마을 어르신과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흐뭇한 자리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마을은 정말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예전처럼 호형호제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힘들기에, 철도관사마을 경로잔치의 훈훈한 모습은 단순히 하나의 행사를 넘어선 세월이 함께 하고 있을 듯 했다.
 

씨줄과 날줄을 엮어온 세월들

철도관사마을의 사랑방 공간이 된 철도마을카페 ‘기적소리’는 철도노조가 공간을 내어주고 호남철도협동조합이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거점으로 만들어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었다.

소경섭 전 호남철도협동조합 이사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철도노조 간부들은 마을 사람들과 유대관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철도의 중요한 근대자원인 철도관사마을을 철도문화마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마을사람들과 친해지지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매일 출․퇴근하는 철도노조 간부들과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한 동네 사람같이 허물없이 지낸다”고 말한다.

철도문화마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마을 사람들이 소외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철도노동자들과 반평생 넘게 철도관사마을을 지키고 살아온 철도 가족들, 그리고 철도관사마을이 제2의 고향이 된 사람들이 서로 엮여 몇 년 전부터 오밀조밀하게 이런 저런 자리를 만들면서 그물코를 엮어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그 자체가 품고 있는 온기를 모아내는 누군가의 우직한 발걸음으로 인해, 사람 냄새나는 마을의 아름다운 사연을 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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