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선암사 홍매화     

▲ 홍매화

조계산 선암사에는 살아있는 보물이 여럿 있다. 그 중 으뜸이 홍매화이다. 선암사 홍매는 2007년 11월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선암사 후문 길에 역대 큰스님이 기거하는 ‘무우전’ 담 밖으로 홍매화 열 그루가 나란히 담장에 기대어 서 있다. 이곳의 홍매화는 매년 2월 말이나 3월 첫 주쯤이면 아름다운 붉은 향기를 피워 낸다.

이곳 외에도 칠전(호남제일선원) 현판 앞과 해천당 앞 등에도 설한매들이 옥당의 사립담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품격있는 군자의 첫 자태가 의연한 고색에 둘려 돋보이는 이 홍매는 남도의 이른 봄을 풋내로 하얗게 들썩이며 자랑삼는 군락도 아니요, 고작해야 속눈썹 그늘도 못 채울 손가락의 숫자에 불과하지만 몸통에 핀 검버섯의 비늘들이 인고의 연륜에 담긴 지혜를 아무에게도 자랑삼지 않으니 그 고고함에는 당천(當千)이 무색함이랴!

진정한 2월(음력) 매화의 감동은 이곳 선암사에서 만날 수 있다.
 

와 송

▲ 선암사 와송
▲ 선암사 와송

선암사에는 특별한 모습으로 자란 400년 수령의 거목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1500년 고찰의 신비를 더해준다. 천불전(무량수각) 앞 축대에서 창파당(종무소) 앞 공지에 몸을 뉘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수많은 지팡이에 힘겹게 의지하고 있는 이 소나무는 그 형상에서 이름을 빌어 ‘선암사 와송’이라고 한다.

선암사 천불전 중수 상량문에 의하면 “만력 년 후기에 천불전 계단 아래 소나무를 심었다”고 하였으니 그 연대를 환산해 보면 중국 명나라의 연호인 만력 연간은 1573~1619년으로서 후기라 하였으므로 1610년 전후로 추정되는데, 그렇게 보면 수령은 약 400년이다.

선암사 와송이 처음부터 와송의 형태로 자란 것은 아니었다. 자라면서 자신의 몸무게로 차차 기울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와송 밑에 천불전 연못이 조그맣게 남아 있는 것이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증언에 의하면 1940년대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었다고 하니, 이미 와송의 역사는 사람의 나이로 환갑을 훨씬 넘겼다. 

오랜 세월에 걸쳐 지금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니, 선암사의 와송이 더욱 신비롭다. 선암사에서는 와송을 보호하기 위해 2005년에 외곽으로 사각의 담을 쌓았다.
 

수양 벚나무

▲ 수양 벚나무

선암사 종무소 입구의 담장 밑에는 그렇게 크지 않은 벚나무 4~5그루가 가지를 늘이고 서 있다.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작은 벚나무처럼 보인다. 그 중에서 제일 큰 나무에 메달아 놓은 ‘수양 벚나무’란 이름표를 보고 나서야 뭔가 ‘수양’이란 낱말과 나무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비교해 보게 된다.

그리고 나서 천안 삼거리를 연상하기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느다란 가지들을 수양버들처럼 사방으로 늘어뜨린 흔치 않은 모습이다. 지금은 ‘처진 올 벚나무’로 이름을 바꾸어 달았다. 

개울가에 선 수양버들은 머리를 감고 거문고를 탄다지만 선암사의 수양 벚나무는 스님들의 수고를 덜게 마당이라도 쓸려는 지…

성숙해진 녀석은 이른 봄 가슴이 부풀어 오를 때면 칭칭 늘어진 가지에 꽃술을 촘촘히 매달아 벌을 유혹하려 들지만 아직 어린 녀석들은 덜 자란 머릿결을 빗어 내린 듯 듬성듬성 꽂아 놓은 꽃잎 치장이 수줍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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