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의 거미줄』/ E. B 화이트 글, 가스 윌리엄즈 그림 / 시공주니어
무녀리(한 태에서 태어난 여러 마리의 새끼 가운데 맨 먼저 나온 새끼를 가리키는 순우리말로 다른 새끼들에 비해 유난히 작고 허약함)로 태어나 죽임을 당할 뻔했던 아기 돼지 ‘윌버’가 영리하고 다정한 친구 ‘샬롯’의 지혜와 용기로 ‘대단하고, 근사하고, 눈부시고, 겸허한’ 돼지로 성장해가는 이야기 『샬롯의 거미줄』은 우리 삶의 풍요로움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잘 보여주는 동화다.
8살 소녀 ‘펀’은 제 구실을 못해 없애버리려는 끔찍한 아빠의 도끼로부터 ‘작게 태어난 건 그 돼지의 잘못이 아니’라며 윌버를 구한다. 그러나 펀과 헤어지고 헛간에서 살게 된 윌버는 함께 놀 친구를 찾을 수가 없어 슬픔에 빠져 흐느낀다. 그런 윌버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회색 거미 샬롯은 아기 돼지 윌버와 친구가 된다. 또다시 윌버에게 찾아 온 죽음의 공포. 봄돼지로서 겨울이 오면 잡아먹히게 될 것을 알게 된 윌버는 발버둥치며 울음을 터뜨리지만 샬롯은 차분히 친구를 죽음의 공포와 위협으로부터 구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윌버를 구원할 방법을 찾아낸다.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대단한 돼지(SOME PIG)” “근사해(TERRIFIC)” “눈부신(RADIANT)” 이라는 글자가 쓰여진 샬롯의 거미줄 덕분으로 윌버는 사람들에게 뽀얗게 살이 오른 특별하고 유명한 돼지가 된다.
윌버에게 샬롯은 목숨을 구해주는 은인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가르쳐 준 스승이기도 하다. 윌버는 샬롯과 친구가 된 이후로 자신의 평판에 걸맞게 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대단하고 근사하고 눈부신’ 돼지가 어떤 것인지도 고민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특히 샬롯과의 헤어짐과 죽음에 대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샬롯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던 윌버에게 아무도 너에게 먹이를 줄 사람이 없다는 말은 덜컥 겁이 난다. 아무리 우겨보려 해도 누군가 먹이를 갖다 주어야 살아갈 수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현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생에 대한 이러한 ‘겸허함’은 포기가 아니라, 샬롯의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지혜와 어린 생명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배우게 한다.
샬롯에게 윌버는 샬롯의 삶을 단지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좀더 의미있게 만들어 준 귀한 존재다. 자신의 작은 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한 뼘 넓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 삶과 그 누군가의 삶이 겹쳐지는 일이므로. 당장 보이지 않은 이익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닐테지만, 샬롯의 말처럼 자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승격시키려 했던 노력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우리를 좀더 나아가게 하는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모든 일이 회색 거미 한 마리가 이루어낸 일이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 채 샬롯은 죽어가지만,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샬롯은 쓸쓸하지 않다. 죽음으로 그녀는 사라지지 않고 윌버에게 그녀의 딸들에게 그리고 독자인 우리들에게 깊은 우정과 배움의 새로운 자양분이 되는 감동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