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종삼
순천시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세계적으로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주거문화 때문에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린다. 전체 국민 10명 중 7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아파트관리비로 걷히는 돈만 연간 12조원에 달한다고 하니 과히 틀린 표현은 아닌 듯싶다. “요즘 아이들에겐 아파트가 고향”이라는 TV광고가 왠지 서글프면서도 절절하게 공감되는 건 비단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아파트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로마의 귀족들이 서민들에게 임대한 ‘인슐라’라는 임대주택에서 시작됐다. 1층엔 상점이 있고, 2층부터 5층까지 주거공간을 갖춘 일종의 주상복합건물인 셈인데, 당시에도 귀족들은 ‘인슐라’를 통해 높은 임대료를 챙기며 부동산투기를 일삼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곤 했다. 이를 보면 애초부터 아파트는 재테크 수단으로 악용될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 오늘날과 같은 아파트가 처음 등장한 유럽에서는 아파트단지가 복잡한 도시문제와 도시폭력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거대한 규모는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서울의 아파트단지를 보고 놀라 아파트가 한국에서 이상적인 주거형태로 자리 잡게 된 원인을 파헤친  ‘아파트공화국’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발레리 줄레조는 유독 한국에서 아파트가 각광 받게 된 요인으로 강력한 권위주의 정부의 정책과 재벌회사의 이해가 맞닿은 결과로 본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정부는 인구증가에 따른 주택난 해결과 봉급생활자들의 헌신을 유도하기 위해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함으로써 중간계급에게 주택 소유와 자산 증가라는 혜택을 주었다. 그 결과 그들의 정치적 지지를 얻었으며, 재벌회사는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었다. 도시 중산층의 거주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아파트는 현대적인 삶의 표본이자 재산 증식의 지름길로 한국인들에게 받아들여졌고, 대대적인 아파트 건설 붐으로 지금과 같은 거대한 아파트공화국이 형성됐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고도 성장기에 서울에 몰려든 사람이 얄팍한 월급을 쪼개고 쪼개 청약통장을 만들던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대한민국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한 청약 열풍에 휩싸였고, 아파트를 가졌다는 건 중산층에 진입했다는 일종의 신분증으로 통했다.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사람은 전세난민의 힘겨운 굴레를 숙명처럼 짊어져야만 했다. 그 와중에 아파트는 가족의 안락한 삶을 누리는 주거공간이기 보다 신분 과시와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아파트 소유자들도 더 넓은 평수와 더 좋은 단지로 이주하기 위해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고 대박을 안겨줄 부동산정보를 찾아 헤매야 했다. 이런 세태 속에서 아파트를 활용한 재테크는 한국인에겐 필수적인 능력으로 간주되었고, 편법과 위법이 판을 치게 됐다. 수 천 명이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 불법전매는 공무원들의 도덕불감증과 함께 아파트를 재테크수단으로 당연시 해 온 잘못된 관행이 불러온 아파트공화국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의 산물로 국민의 70%가 아파트에 사는 시대가 되었다. 마을이란 전통적 울타리는 사라지고, 지구와 단지로 구획된 딱딱한 콘트리트 세계에서는 시세와 평수에 따라 계층이 나뉘고, 사귀어야 할 친구가 구분돼 자라나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몰상식이 버젓이 자행되기도 한다. 집이 가족의 삶과 행복이 실현되는 공간이 아니라 상품이자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한 아파트공화국에선 어떤 국민도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유랑민일 수밖에 없다. 고도성장의 속도만큼이나 고층으로 치솟은 공간 속 사람들의 고통과 불안도 비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내 가족과 내 이웃이 살아갈 보금자리로 인식하고, 아이들에게 고향다운 고향으로 물려줄 책임이 아파트공화국 국민에게 절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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