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요...

저는 대학생인 국민성(가명)입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는 그동안 계속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많이 다쳤었거든요. 몇 달 전에 저는 친한 친구랑 둘이서 버스를 타고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갑작스러운 사고여서 어떻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 자리에서 죽고, 좀 심하게 다쳤지만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제가 의식을 차렸을 때 그 친구는 이미 장례를 치른 상태였습니다. 너무나 슬펐습니다. 제가 그렇게 멀리 여행을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끔찍한 사고는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 이후로 매일 밤 악몽을 꿉니다. 사고를 당하는 꿈을 꾸며 가위에 눌리기도 하고 죽은 친구가 나타나 왜 자기만 죽느냐며 살려달라고 매달리기도 합니다. 한번 그러고 나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뜬눈으로 지새우게 되기도 하고 술기운에 의존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혼자만 살아난 비겁자라고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것 같아 사람을 만나기도 싫고 학교에 가는 것도 두렵습니다. 거리에 나가 자동차를 보기만 해도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려 바깥에 나가기도 힘이 듭니다. 며칠 전에는 어린 조카가 놀러 와서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부딪히며 노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러다가는 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폐인이 될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듭니다. 더구나 기가 막힌 것은 저의 가장 친한 친구는 죽고 이 세상에 없고 저는 이렇게 괴로운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계속 돌아간다는 겁니다. 다른 친구들은 개학해서 학교에 다니고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먹으며 웃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친구들이 솔직히 한편으론 이해가 가고 부럽기까지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나는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합니다. 죽은 친구에게 너무도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따라 죽을 용기는 없습니다. 저에게 이제 더는 진정한 우정이나 사랑, 행복한 생활이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면 어떨까요

민성군은 함께 놀러 가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으니 얼마나 충격과 상심이 크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괴로우면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표현을 했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상담을 받으려 하는 마음이 무척 대견스럽게 느껴집니다. 편지의 내용을 보니 민성군은 정신적으로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갑작스러운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고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는 통상적인 상황에서는 겪을 수 없는 극심한 위협적인 사건에서 심리적 충격을 경험한 다음에 일으키는 특수한 정신과적 증상들을 뜻합니다. 위협적인 사건이라고 함은 강간, 폭행, 전쟁, 홍수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 미국의 911테러, 벨기에 브뤼셀공항테러, 우리나라의 삼풍백화점붕괴, 대구치하철 가스폭발, 진도 앞바다 세월호참사 등 교통사고, 화재, 해상사고 같은 사건을 말합니다. 민성군이 경험한 교통사고도 이에 포함이 되겠지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증상은 사람들은 일단 이전에 수행하던 활동에 관심이 줄게 될 수 있습니다. 민성군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호소했는데 이처럼 늘 문제없이 수행해오던 학업이나 일상적인 업무수행을 어려워하게 되고 의미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거나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되고, 행복이나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워하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경험했기에 언제 또 그런 어려움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느낄 수도 있고, 그러한 민성군의 감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에 화가 나고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건이 반복적인 악몽으로 재현되어 수면이 어렵고 과민반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친구는 죽었는데 민성군은 살아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 역시 이와 유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민성군이 거리에 나가기조차 싫은 것처럼 사건과 유사하거나 사건을 상징하는 활동이나 상황에 대한 공포 때문에 회피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회피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 성격이 변화하고 대인관계가 어렵고 학업포기나 실직 등 생활의 어려움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조기에 도움을 받고 사고이전의 기능상태로 복귀하려는 노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보통 사건 후 3개월 이후까지 증상이 지속되면 만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성군도 무서웠던 경험을 조금씩 노출해서 두려움을 없애는 탈감작법과 한꺼번에 자극을 줘서 자극에 대한 불안을 경감시키는 인지행동주의 놀이치료 등을 활용하거나, 사고를 상상하여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을 처벌하게 상상하게 하는 방법이나, 사고에 의해 잘못 형성된 왜곡된 생각을 재구성하는 방법 등을 활용하는 가까운 상담기관이나 병원을 찾아 도움받기를 권합니다. 사실 현대사회에선 누구나 이러한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성군이 상담을 통해 솔직히 털어놓고 도움을 청할 용기가 있는 사람인만큼 지금의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연용 순천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순천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 (국번없이) 1388/www.scyouth1388.or.kr / (061)749-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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