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어버이연합 집회를 지시한 것은 헌정 질서를 유린하는 행위이다.



▲ 장용창 논설위원
1. 어버이연합이 주최한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이 단체가 일당 2만원을 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이 자금은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흘러나왔으며, 어떤 시위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지시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거나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의 지점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에서 분노의 지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조금 길수도 있고, 내용도 여러 가지로 산만하지만 끝까지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2. 제주도가 고향인 제가 어렸을 때 우는 아이들을 협박하는 부모의 말은 “경찰이 잡아간다”였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사회계약설, 민주주의, 삼권분립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이런 것들이 민주공화국인 우리 나라의 근본적 토대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경찰이 잡아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는 문제 제기가 제 제 안에서 꿈틀댔습니다.


3.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는 근대 유럽에서 시민 계급이 혁명을 통해서 만들어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민주주의가 법치주의와 동의어라는 것을 아시나요? 민주주의 이전에는 거의 모든 나라가 왕정이었습니다. 세금을 거두는 것도 왕 맘대로, 사람을 잡아다 죽이는 것도 왕 맘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왕이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나라는 사람이 언제 왕의 마음에 안 들어 끌려가 죽을지 모르고, 내 돈을 언제 왕이 맘대로 빼앗아갈지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근대 시민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이 왕정을 대신해서 찾아낸 가장 중요한 통치의 원칙들이 나옵니다. 그것은 (1) 모든 개인의 신체적, 재산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2) 개인의 신체적, 재산적 자유에 제한을 둘 때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더 증진시킬 때에만, 법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만 해야 한다, (3) 그런 법률은 국민들의 대표자들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만들어야 한다라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민주주의는 결국 개인들의 신체적, 재산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개인의 신체적, 재산적 자유를 침해하고자 할 때는, 그 침해가 다른 사람의 신체적, 재산적 자유를 더 높인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하며, 그것마저도 다른 사람들이 합의한 법률에 의해서만 해야 합니다. 그러니,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동의어입니다. 그 누구도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민주주의가 독재와 다른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저는 지금 이상적인 뜬 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대한민국 헌법에 나온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헌법 제12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ㆍ구속ㆍ압수ㆍ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ㆍ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4. 다시 제주도의 경찰 얘기로 가봅시다. 우는 아이에게 경찰이 잡아간다고 협박하던 부모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걸까요? 제주도에선 1947년부터 삼년 동안 4.3 학살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때 학살을 저지른 집단이 경찰과 서북청년단입니다. 주로 북한에서 내려온 우익 깡패들로 구성된 서북청년단이 했던 일들은 살인, 강간, 폭행 등이었는데, 경찰은 이런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비호하고 함께 활동했습니다. 또한 경찰은 재판도 받기 전에 불법 감금과 고문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우리 자랑스런 헌법이 1948년 7월 7일 제정된 이후에도 경찰의 불법 행위는 그대로였습니다.

신체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한 것은 근대 이전의 민중들에게 너무나 흔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소설들을 보면 악덕 지주들이 소작농이나 노비들에게 사적으로 폭행하고 처벌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조선이라는 왕정에서 인권을 유린당하던 민중들은 1910년 이후 일본 제국주의 경찰들이 맘대로 휘두르는 칼을 맞았고, 1945년 이후에는 미군정, 1947년 이후에는 대한민국 경찰들이 저지르는 폭행에 당했던 것입니다.


5. 저는 2005년에 네팔에서 한 달 정도를 보내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네팔은 왕과 왕을 반대하는 민주 세력이 총을 들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쓴 전략이라는 것은 그냥 국민들에게 돈도 주고 무기도 대주면서 민주 세력과 싸우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국민들을 군대나 경찰이라는 조직으로 정식 채용하지도 않고, 그냥 돈 몇 푼 일당으로 주면서 민주 세력에 원한을 품어 싸우도록 은근히 조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놓고 서로 싸우다가 국민들이 죽기라도 하면, 자기는 관계 없다고 발뺌을 하는 식입니다.

대한민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의 신체적 자유에 제한을 가하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경찰과 검찰, 법원 등 법으로 정한 기관에 소속된 공인들뿐입니다. 그리고 경찰과 검찰이 국민들의 신체적 자유에 제한을 가할 때조차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법률에서 정한 대로만 하도록 엄격히 행위 제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법률에 의해서만 자유를 침해하는 것, 즉 법치주의는 바로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와 동의어입니다.

2005년 당시 네팔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저런 또라이 왕의 또라이 짓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네팔의 왕이라는 자가 왕정 반대 세력과 싸우는 것에 놀란 게 아닙니다. 그 싸움을 함에 있어서 군대가 아닌 민간인들에게 일당 몇 푼을 주어가면서 원한과 보복 관계에 휘말리도록 만들어버리는 그 비열함에 치가 떨렸습니다. 왜냐하면 제주도의 경험이 말해주든, 그런 민간인들끼리의 불법적인 폭력 행위의 상처들은 60년이 지나도록 치유되지도, 잊혀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왕이라면 최소한 자신의 백성을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네팔의 왕에겐 그 정도의 마음도 없었습니다. 결국 네팔의 왕은 2005년말 민주 세력과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네팔의 왕정은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6.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뭘 하는 사람일까요? 대한민국 헌법 제69조에는 대통령이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때의 국민은 자기를 찍어준 지지자들만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집회의 자유는 우리 헌법 제21조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입니다. 그러니, 누구나 자신의 의견 표현을 위해 집회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집회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두 국민 집단 중 한쪽 편만 들어서 그들에게 일당을 주거나, 정보를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이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직무-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를 위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헌법 제66조에서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대통령이 자기 맘에 드는 특정 세력의 집회를 지지하고, 자기 맘에 안 드는 다른 세력의 집회를 방해했다면, 이는 평등과 자유라는 헌법의 가치를 수호할 대통령의 책무를 위반한 중대한 범죄 행위입니다.


7. 제가 결론적으로 드리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지금의 대통령 혹은 청와대에서 일하는 자들은 자기가 특정 세력의 이익을 옹호하는 책무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은 착각의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착각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 행동은 바로 범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입니다. 만일 대통령이 한쪽 편만 든다면, 그래서 한쪽 편 사람들에게 집회한다고 일당을 주거나, 정보를 주었다면, 이는 헌법을 유린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어버이연합과 청와대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우리가 분노해야 할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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