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청년이 있는데 공개 중매 좀 해볼까요?







용환 씨는 해룡 신성리 출신 순천 토박이로 순천을 떠나본 적이 없다.

고교 시절 별명이 빼빼이셨던 정치경제 선생님은 늘 꽹과리채를 들고 다니셨다. 선생님은 풍물반을 지도하셨는데 그것은 지휘봉 또는 무기가 되기도 했다. 용환 씨에게는 무기에 더 가까웠다. 머리에 내리꽂을 때 들리는 ‘딱 따다닥’ 소리와 ‘으억’ 신음은 남학생들의 일상이었다. 꽹과리채가 온몸과 익숙해질 즈음 대학에 진학했고, 꽹과리와의 추억을 잊지 못해 풍물반에 가입하게 되었다. 현재 그의 인연들은 거의 여기서 시작한 것 같다.

그가 처음 대학 새내기의 참맛을 즐기던 1994년은 문민정부의 흐름을 타고 사회 전반에 새로운 가치와 문화의 큰 변화가 일던 해였다. 전에 없던 변화와 일렁임으로 많은 젊은이가 열광하던 해 이기도 했다. 많은 새내기가 X세대라 불리우며 새로운 문화에 젖어 ‘교실 이데아’를 외치던 해에 용환 씨는 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풍물반에서 꽹과리채를 잡던 청년은 서태지보다 정치에 관심이 생겼고 단군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비분강개하며 시위현장에 뛰어들었다. 96년에는 서울로 상경해 연세대에서 연합투쟁을 하기도 했었다. 그때는 나라를 구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탈춤 추고 난 뒤풀이, 풍물공연 뒤풀이, 시위 후 뒤풀이 그저 공짜 술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뜨거웠던 열정도 입대와 함께 현실과 타협하는 젊은이의 추억으로 잠이 들었다. 어느 날 군에서 정훈교육을 받던 중 한편의 비디오를 보는데 96년 연세대 한 중심에서 한미 FTA 협상 반대 깃발을 들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면서 울컥했다. 하지만 뜨거운 목 넘김으로 젊은 시절 한때의 호기와 패기를 삼키고 이제는 어른이 되기로 했다.

99년에 전역을 하고 복학을 해보니 사회가 많이 변해있었다. 아니 “내가 변했다.” 예전에 나라를 구해 보겠다고 외치던 청년은 이제 내 생계와 미래가 더 시급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흔히 말하는 스펙이나 내놓을만한 자격증이 없는 지방대학 청년이었다. 대부분 처음 선택하는 직업이 그렇듯이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길도 가보고 자격증 준비도 해보고 이것저것 취업의 문을 두드려 보았다. 어릴 적에는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누구나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는 줄 알았었다. 그게 누구나가 아니란 것을 참 늦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예비역 아저씨가 된 이래로 부모님께는 걱정을 덜 끼치는 아들이 되었고 책을 보았고 취업을 했고 생계를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뜨거운 속내가 어디 가겠는가? 여전히 아직도 가슴이 뜨거운 ‘인간해방 민속극 연구회 소리 탈패’의 김용환 시절을 잊지 못한다.

   ▶ 이름: 김용환
   ▶ 나이: 토끼띠 (응답하라 1994 친구들)
   ▶ 본관: 김해 (흔하다)
   ▶ 직업: 전기공사 (지금은 사장)  ☎ 010-3345-9193
   ▶ 키  : 착해요.
   ▶ 체중: 아주 착해요. 
   ▶ 얼굴: 사람이 참 진솔해요.
   ▶ 재산: 요즘 이런 사람이 없어요.
   ▶ 이상형: 상냥하고, 예쁘고, 키 큰 (때려주고 싶다.)

▶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청년실업에 대한 고민은 과거에도 있었다. 구직자들도 취업을 위해 고민을 하지만 사실은 기업들도 구인을 위한 고민이 많다. 중소기업은 늘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다. 청년들이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일자리는 많이 있다고 본다. 고정급여와 안정성이라는 함정에 갇혀서 몇 년씩 희망이 안 보이는 수험생의 신분으로 도서관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는 ‘낮은 곳부터 빠른 시작’이 좋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한우물 파기라는 말이 답답할 수도 있지만 3년, 5년, 10년이 지나보면 그 분야의 새로운 길이 보이기 마련이다. 뻔한 답이지만 자신이 잘하는 일, 즐길 수 있는 일, 가치 있는 일이면 좋겠다. 세 가지 조건을 다 만족 하는 일을 찾기는 힘들겠지만, 직업선택의 첫 번째 조건이 돈이 아니길 바란다.

▶ 지금의 본인은 어렸을 때 그렸던 모습인가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렸을 때는 소심해서 남 앞에서 한마디도 못했었다. 교실에서도 늘 조용한 아이였고 미래에 대한 그림조차 없었다. 대학에 와서 처음 세상을 배우게 되었다. 돌아보면 탈패(풍물반)생활 때 접했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인 것 같다. 그때는 공연을 앞두면 무박 3일의 연습과 훈련도 지치지 않았었다. 그 친구들과 함께했던 눈물과 무용담을 기억하며 군 생활도 사회생활도 견뎌냈다. 어릴 적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어도 지금의 내가 좋다. 열심히 살고 있고 즐겁다.

▶ 여자 친구가 생기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여행 가고 싶어요. 무박 3일 동안 술 마시며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비몽사몽 간의 취기와 함께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연애전과 5범이라고 고백) 코피 흘릴 때까지 술 마셔도 용서해줄 사람이면 좋겠어요. (이그. 쯧쯧쯧. 왜 아직 싱글인지 알겠다)

▲ 연향동 현장에서 작업중이다.

용환 씨는 전기공사를 하는 작은 사업체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신축건물, 리모델링, 주택, 공장 등 모든 건물에 전기시설을 설비하고 전등교체와 같은 일을 한다. 졸업 후 취업재수 삼수를 거쳐 기업체에서 일도 해보았으나 매일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고 반복하는 수동적인 일상이 본인에게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자영업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도전한 지 3년째 지금까지 잘 이끌어왔고 이제는 자리를 잡은 듯하다. 옆집 오빠에서 옆집 총각 지금은 옆집 삼촌이 된 용환 씨는 착하다. 부지런하다. 생각도 곧다. 그리고 편하다. 이 정도면 중매서도 뺨은 안 맞을 것 같은데 ㅎㅎ
두꺼비집에 퓨즈 나갈 때만 찾지 말고 소개팅 좀 시켜주세요.  ☎ 010-3345-9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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