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밥 공주』 / 이은정 글, 장문주 그림 / 창비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주인공 안공주는 6학년이다. 공주는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는 일용직으로 일을 하다가 술 때문에 재활원에 들어간 후로 혼자 살고 있다. 공주는 밥이 없거나 함께 먹을 반찬이 없어서 때때로 굶기도 한다. 그래서 공주는 집에서 밥을 못 먹는 때를 대비해 학교 점심시간에 급식을 많이 먹어둔다. 친구들 눈치가 보이기는 하지만 밥을 꾹꾹 눌러 퍼 담아 소나기밥을 먹는다. 씩씩한 공주가 살아가는 법이다.

오후 내내 쫄쫄 굶고 왕복 네 시간 거리에 있는 재활원에 아빠 만나러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온 어느 날, 공주는 누군가 기다려준다면, 집나간 엄마가 돌아와서 밥 해놓고 기다려준다면 모두 용서할 것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선다. 그러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르게 캄캄하고 곰팡내 나는 빈집에 먹을 것조차 아무것도 없다. 주머니 털고 방바닥 쓸어서 나온 전 재산 560원이 전부다. 마트에서 고민하고 눈치봐가며 겨우 콩나물 한줌 사들고 나오는데 배달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시장바구니들이 눈에 들어온다. 먹을 것이 터질듯이 넘치게 들어있는 시장바구니들을 보며 군침을 삼키다가 끝내 2층으로 배달 온 시장바구니를 훔친다.

 
그 이후 죄책감에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불편하고 숨막히는 순간들을 보내게 된 공주는 집 앞에서 쓰러지게 되고, 집 앞에 쓰러져 있던 자신을 병원에 데려다 준 2층 팽여사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팽여사는 공주의 어려운 상황을 알고 동정이 가지만 ‘혼낼 사람이 없으니 아이가 도둑질을 쉽게 하지 않을까’ 싶어 마트에 데려가 도둑질한 사실을 알린다. 6학년 공주는 잘못을 고백 하고도 뒷감당이 두렵고 어려워 내일가면 안 되냐고 간청하지만 아주머니는 엄격하게 대응한다. ‘잘못한건 아니 다행이네. 나도 네 사정 딱한 건 알겠다. 하지만 사정 딱한 건 딱한 거고 잘못한 건 잘못한 거야. 지금 무서운 게 내일 되면 안 무서울 것 같아?’라며 마트 사장에게 데리고 간다. 자초지종을 들은 마트 사장은 공주에게는 신고하지 않는 대신 손해 본 돈을 갚아야 한다며 훔친 물건 값의 세배만큼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으라고 선심을 쓴다.

내가 모르는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 ‘공주’가 있었을까? 내가 관심 갖고 보지 않아서 그렇지 내 바로 옆에서 공주처럼 그렇게 물건을 수십 번 만지작거리다 놓았을 것이다. 공주랑 한 건물에 사는 집주인도, 2층 팽여사도, 바로 옆집 총각도 모두 공주가 곰팡이 쓴 지하방에서 혼자 배를 곯고, 너무 심심해 TV를 켜놓고 뒹굴거나 무서운 화장실을 다녀야 하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가까운 이들과는 지나친 관심으로 서로 아프게 하고 힘들어지기까지 하면서도 조금 옆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반성한다. 그러나 공주도, 팽여사도, 마트 사장도, 손해 볼 것 없는 결말이라고 말하기에 뭔가 석연찮다. 애초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또 언제 어떤 사건으로 이런 일이 되풀이 될 지도 알 수가 없다. 잃어버린 물건을 훔친 아이에 대한 잘못을 타이르고 불쌍한(?) 아이를 자기 집에 들어오도록 허락한 팽여사의 행동을 보면서, 또 잘못한 아이가 그 만큼의 댓가를 치르도록 배려하고(?) 물건으로 보상하는 마트 사장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보면서, 주위 한번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던 내 자신을 반성하는 것으로 소나기밥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지독한 현실에 놓인 수많은 우리 주위의 ‘공주’들을 우리가 다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생긴다. 소나기밥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현실을 만들고 방치한 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는 것만이 답인가 싶다.

 
문학은 인간극장 같은 휴먼다큐나 시사고발프로그램과 다르다. 프로그램 제작 의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인식하게 하여 감동하고 내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문학이 감동을 넘어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독자의 몫을 남겨둔 채, 현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상상력이 그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소나기밥 공주』의 상상력 부재는 아쉽다.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은 가장 소극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해 나가는 팽여사를 통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잖아’라는 우리의 ‘자발적 복종’을 옹호하게 한다. 공주 역시 스스로 잘못한 일에 대한 갈등을 겪긴 하지만, 또 다른 형태의 물질적인 댓가를 치르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게 해버린 안이한 결말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너무 뻔한 결말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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