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택 논설위원
장님들이 모여 코끼리를 만지면서, 어떤 사람은 기둥 같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벽같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부채 같다고 했다는 말이 있다. 사물의 전체를 못 보고 부분만 본 까닭이다. 그렇다. 우리는 사물의 전체를 보기가 어렵다. 대부분 어떤 조각, 부분만 보고 판단한다. 또한 “한치 앞을 못 본다.” 는 말도 있다. 시간적으로 앞일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처지를 표현한 말이다. 이렇게 사람은 공간 시간 상황적으로 한계에 처해 있으므로, 어떤 대상(상황)의 전모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인간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대한민국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난감한 질문이다. 여러 사람이 자신의 처지에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체를 정확히 본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 판단일 뿐이다. 우리나라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많은 정보, 지식,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힘 있고 큰 기관들, 예를 들면 청와대, 국회, 정보부, 재벌, 학계 등이 정확하게 보고 있을까? 날마다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것이 이 나라의 진상이라 할 수 있을까? 글쎄, 어쩌면 그들도 장님코끼리 만지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재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온갖 정치 경제 사회 생태 환경 차원의 총체적, 구조적 난국에 직면해 있다. 어떤 한 부분만 땜질해서 고치면 되는 수준을 훨씬 넘어버렸다.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의 체제, 구조, 질서는 종언을 고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지구인이 다양한 갈등, 고통, 혼란, 불의를 겪고 있다. 많은 사람이 불안하고 갈팡질팡하고 좌절하기 쉽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 체제가 몰락하지 않고도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을까?

우리는 어머니의 산고를 알고 있다. 새로운 옥동자를 낳기 위해서 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큰 고통을 겪는다. 생명의 탄생, 기적을 위해서 어떤 값을 치루어야 하는 모양이다. 나는 옥동자 같은 새로운 세상이 머지않아 오고 있다고 본다. 현재 지구인이 겪고 있는 이 모든 혼란, 고통, 모순은 새 세상이 오기 직전의 산고다.

허나 어머니의 산고는 매우 고통스럽다. 이 사실을 정확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냥 쉽게 옥동자를 쑥쑥 낳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을 놓지 않는다.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새 생명의 탄생이 가까이 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제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약간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 했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대로 변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고통과 혼돈은 반대로 새로운 기쁨과 조화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새로운 세상은 오고야 말 것이다. 악성(樂聖)이라 알려진 베토벤이 교향곡 9번에서 ‘환희의 송가’를 첨부했을 때,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고 한다. 사실 베토벤의 환희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갈등 후에 얻은 것이었다. 지금 지구인이 겪고 있는 고통과 갈등이 베토벤의 그것보다 적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지구인 모두가 함께 ‘환희의 송가’를 부를 때가 저만치 오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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