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레츠에 가면 가늘고 하얀 손가락의 여인을 만날 수 있다. 반짝반짝 네일아트가 어울려 보이는 가느다란 손가락에는 우악스럽게도 대걸레, 수세미, 빗자루, 행주가 잡혀있다. 그녀를 볼 때면 늘 작업복 차림이다. 자칭 가사도우미라고 말하는 그녀! 매주 수요일, 광장신문에 가면 2000여부의 신문을 접어서 발송 작업을 하는 인아씨를 만날 수 있다. 광장신문에 처음 발을 딛는 사람이라면 언뜻 관리직원이나 도우미아주머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행사가 있을 때면 언제나 먼저 와서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마무리를 한다. 거칠고 힘든 일을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레츠의 보물, 유일한 2G, 우렁각시, 콩쥐, 유리공주라는 많은 수식어 구를 가지고 있는 조합원이다. 짐작하듯이 참 곱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곱다’ 와 ‘부지런하다’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일하는 손이란 ‘두껍고 거친’ 이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하고, 또한‘거친’ 이라는 단어는 고단한 삶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의 하얀 미소를 마주 하면 좀처럼 고단함과의 연결 고리를 찾기가 어렵다. 그녀는 어쩌다 대걸레자루를 들게 되었을까?

  
▶ 언제부터 순천에서 살고 있는지?

2009년 여름에 남편을 따라 캐나다(벤쿠버)에서 순천으로 왔다. 이미 영주권까지 보유한 상황이라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교육자를 꿈꾸던 남편의 소망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 하고 순천에 정착하게 되었다.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더 편한 딸에게 가장 미안한 일이었지만 이곳에 와서 적응을 잘 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 광장신문 발송작업(무임금 단순노동)은 왜 하나요? (사실은 발송작업 뿐만 아니라 아주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작년에 김영희 선생님의 지역화폐 강의를 들은 후 언협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지역화폐의 초기 회원으로 두루(지역화폐단위: 원과 비슷함)를 벌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팔아야 하는데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은 집안일과 단순 노동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품이 되고 삯이 되는 것은 뿌듯함이다. 전혀 망설여지지 않았다. 나는 주부이기 때문에 가사도우미가 나에게 맞는 일이고 그것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누구의 아내로 얻어지는 명성이 아닌 오직 김인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기에 나는 가사도우미가 좋다.

▶ 동의하기 쉽지 않은 생각입니다. 저를 이해시켜 주세요.

저는 원래 수줍음이 많고 남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라 결혼 후 별다른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이 일 때문에 먼저 귀국하게 되고 캐나다에서 1년간 아이와 함께 생활을 해야 했어요. 처음으로 어느 누구의 보호도 기대할 수 없는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는 나를 아주 많이 변화하게 해주었지요. 가게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아! 나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서양에서는 정말 직업의 차별이 없어요. 청소부, 요리사, 의사, 교수 무엇이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그 자체로 인정받고 노동 한 만큼의 댓가를 받을 수 있어요. 남보다 더 가진 것이 절대 자랑이 되는 곳이 아니죠. 저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마음을 유지하며 살고 싶었어요.

▶ 지금 레츠활동을 열심히 하는데 혹시 시민운동에 관심이 있나요?

아이~~ 아니에요! 저는 그런 거 몰라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뿐이에요. 저는 레츠가족들이 좋아요. 그저 사람들이 좋아서 또 만나고 싶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아요. 내가 나눌 수 있는 사랑과 일로 인정받는 것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저는 레츠를 통해  김인아라는 이름을 찾게 되었지요. 똑똑함보다는 착함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인아씨가 가장 먼저 인정받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쫓아가는 흐름에 역행하며 살고 있다. 그것은 사는 방법에 대한 큰 용기이다. 나누는 삶으로 그녀는 적게 갖는 대신 더 풍요롭게 얻어가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들의 마음이다.

우리는 물질을 향해 줄지어 달려왔고 아무리 달려도 내 앞에는 누군가 있다. 대부분을 낙오자로 만드는 경쟁에 여전히 참여하고 있다. 바람직하지 않은 시합인줄 알지만 경주를 포기하는 것은 더 큰 두려움이다. 사람은 기본적인 것을 충족하고 나면 편리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원하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소비와 중노동의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바쁘다, 시간 없다, 힘들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외면적인 치장을 버리고 내면의 부유함를 추구하라!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 그래 안다 알어! 아는데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오늘 인아씨와의 짧은 대화는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할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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