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영
순천대생물학과 교수
20대 총선이 끝난 지금부터 정치권은 엄청난 소용돌이와 함께 정계개편이 불가피할 것 같다. 현 헌법체제에서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게 될 경우는 물론이고, 대통령제 개편을 위한 개헌이 추진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계개편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면 국민은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국민에게 정치가 새로운 희망을 줄 것인가, 아니면 환멸을 줄 것인가? 지금까지의 정치권 모습을 보았을 때 정치권은 국민에게 환멸을 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이번 20대 총선은 대부분의 정당이 공천을 할 때부터 정당 민주주의를 크게 훼손한 선거였다. 20대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픈 프라이머리와 혁신공천 등 공천 절차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정당 민주화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실제 공천과정은 십년 이상 퇴보한 모습이었다. 경선을 통해 공천자를 결정한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각 당의 대표나 숨은 권력자들의 구미에 맞게 주문된 공천이 진행되었다.

전략공천은 아래로부터의 지역 민주주의를 훼손하기 때문에 정당 민주주의의 후진적 모습인데, 이번에도 여전히 여러 곳에서 전략공천이 이루어졌다. 다행인 것은 국민이 전략공천 관행을 표로서 심판해 준 것이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당의 후보이다. 호남에서 제3당 지지 열기가 높았던 것과 영남에서 무소속 후보가 선전한 이유는 그동안 각 당의 후보 공천 과정에서 인물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감이 될 만한 큰 인물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답답함이 표출된 것이다.

그런데 호남에서는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애초 민심은 치열한 공천 경쟁을 통해 물갈이가 되기를 희망했다. 이번에는 실력있는 정치인들이 new DJ가 되어 나타날 것도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민심을 역으로 이용해 심판의 대상이었던 기성 정치인들이 옷을 바꿔 입고 모인 바로 그 정당을 지지하게 되었다. 결국 호남의 기존 정치인들은 또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결국 심판대에 올려놓고 선거 기간 내내 화살을 쏘아댄 곳은 호남에서 표로서 심판할 수 없는 영남 진보세력이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제3당이 창당되어 구태를 보이는 정치권에 경종도 울리고, 긴장감을 높여 정책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 그 이유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비교적 보수정당이기 때문이다. 그 내부에는 민주화 운동을 통해 진보적 가치를 표출했던 정치인도 있었지만,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정치인도 존재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우리는 진보적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평화, 자유, 존엄성 등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에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다양성 속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선택할 자유가 폭 넓게 보장되고, 개인의 존엄이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그런 진보적 가치를 확립시켜주는 것이 정치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당이 제3당이 되어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사실 ‘친노’로 일컬어지는 영남의 진보세력은 영남에서 처절하게 투쟁하면서 그들의 진보적 가치 때문에 호남을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리고 호남은 그 진보적 가치 때문에 영남 진보세력에게 대선 때마다 몰표를 주었다. 그런데 이런 전략적 관계가 갑자기 호남으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은 것이다.

정치에서 지역적 기반은 무시할 수 없다. 인구 구조상 이제 호남정권이 탄생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호남은 지역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영남권과 수도권에서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이것이 호남 민심이 바라는 정권교체이고, 새정치이며, 민주국가로서의 발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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