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근홍
순천여고 교사
한마디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을 심판한 선거였다. 또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선거였다. 어느 정당도 승리하지 못했다. 야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한 <더민주당>은 호남에서 심판받았다. <국민의당>은 약진했다고 하지만 호남에 갇혔다. 수도권에서는 새누리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고육지책으로 <더민주당>을 선택했고 호남에서는 <더민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의도적으로 <국민의당>을 선택하였지 <더민주당>이나 <국민의당>에 대한 유쾌한 지지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승리한 것은 오직 유권자의 붓두껑이었다.

범진보정당도 외면당했다. <정의당>만 겨우 4명 당선이다. 정당지지율도 <정의당> 7.23%, <녹색당> 0.76%, <민중연합당> 0.61%, <노동당> 0.38%으로 모두 합쳐도 8.95%이다. 2004년 이래 첫 한 자릿수이다. <정의당>을 제외하고 모두 더해도 <기독자유당> 2.63%보다 못한 초라한 성적표다. 혁신 없고 분열된 진보정치세력에 대한 민심의 질책이다.
 

■ 새누리당 패배의 원인

1. 양극화와 박근혜정권의 실정
37.8%(541만 명)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의 소득이 전체소득의 8.47%로 31조 원이다. 31조는 소득인구 중 1.4%(19만 명)의 비율을 차지하는 고소득층의 32조 원 보다 소득의 합계가 적다.(2010년 통계) 세월호, 성완종리스트, 국사교과서 국정화교과서, 대기업 특혜, 위안부 굴욕적 합의, 부채 5000조 원, 남북관계 파탄, 실업률 20% 육박, 부동산 문제, 자영업의 몰락 등에도 심판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서의 투표율이 전국 최저인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 전통적인 새누리당 지지층이 실정을 거듭한 새누리당에 차마 표를 줄 수 없어 투표장에 나가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번 패배는 새누리당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2. 청년들의 생존투표
금수저로부터 흙수저에 이르는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이 청년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었다. 20대의 투표율이 19대 총선에 비해 무려 13.2% 증가한 49.4%로 집계되었다. 특히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었던 서울에서 20대 투표율은 무려 63.4%였다. 이들은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투표장에 발길이 이끌렸을 것이다. 30대의 투표율은 5% 상승하였다. 가히 생존투표라 할만하다.

3. 유권자 단일화
<국민의당>에서는 단일화를 거부하였다. 박빙의 승부처가 많다는 점에서 선거에 매우 부정적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교차투표를 선택하고 유망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 사실상의 단일화를 이루어냈다. 조직화되지 못한 유권자들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물론 <국민의당< 후보들이 <새누리당>의 표를 어느 정도 흡수한 공도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과(過)가 더 크다 할 것이다.

4. 평화에 대한 소망
한반도 주변의 공기가 심상치 않다. 북에서는 사생결단의 자세로 36년 만에 열리는 5월 초, 7차 당대회를 겨냥하면서 북미평화협정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전쟁과 평화 중 하나를 결단하라는 북의 말 폭탄과 첨단무력의 공개는 예사롭지가 않다. 미국 내의 분위기도 강경대응과 대화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박 정권이 지속적이고 의도적으로 대북적대정책을 펼쳤으나 이번 선거에서 북풍이 작동되지 못한 것은 국민들이 평화를 선택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5. 언론과 바닥민심은 달랐다.
<더민주당>에서 ‘정권심판론’을 내세우자 <새누리>당에서는 ‘국회심판론’을 내세워 물타기 하고, <더민주당>에서 ‘경제위기론’을 내세우자 <새누리>당에서는 ‘경제활성화’로 물타기 하여 적확한 야당의 구호가 잠수한 것 같았지만, 기실은 물밑에서 살아 작동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언론에서 그 정도 맹폭을 가하면 거짓도 진실로 전변하여 실제화 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이명박 정권 이래의 지난 8년 간의 실정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시민의식이 살아있다는 것을 방증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미리 간파하지 못한 지식인들의 사물 인식 능력에도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6. 김종인 비대위 대표에 대한 평가는 유보한다.

7. 그밖에도 부정선거가 없었던 것 같은데, 부정선거 감시단의 역할도 컸지만 부정선거가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만큼 우리사회의 불신의 골이 깊나 보다.

■ 4.13 총선의 의의와 향후 전망

1. 보수세력의 집권전략인 이데올로기 카드에 파열음이 났다
누가 뭐래도 한국사회의 보수세력을 유지하는 수단은 지역․반공․성장이데올로기일 것이다. 4.13총선의 핵심적 의의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파열음이 났다는 데에 있다. 지역적으로는 호남에서 <더민주당>이 침몰하고 영남에서 <새누리당>이 심판 받았으며, 북풍이 먹히지 않다. 성장해야 잘살고 취직도 잘된다는 미신이 깨진 것이다. 사실 성장의 혜택이 대부분 가진 자 들에게 돌아간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삶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GNP 상의 허구적 숫자에 불과하다.

<더민주당>이 영남에서 약진하며 지역구조가 흩어진 원인의 하나는 <국민의당>이 호남당을 자처함으로서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을 넓어진 것이 상당한 효과로 작용되었을 것이다. 사실 삼국의 역사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지역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고려 창건 이래 조선까지의 1000년 이상의 세월을 통해 지역감정은 무화되었다. 이것이 양김의 분열 이후에 정치적으로 지역민이 불모로 잡히면서 전라도 주민이 빨갱이로 매도되고 경상도 지역은 보수로 편입되었던 것이다. 원래 경상도는 야당 성향이 강한 곳이었다. 어쨌든 이 지역감정과 반공이데올로기는 정치적 토대가 새롭게 구축되어야 타파되지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분단체제의 극복과정에서 해결될 것이다. 어쨌든 이데올로기에 묶인 지역민들이 삶의 형식을 부분적이나마 되찾은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2. 국민이 정치지형을 선택했다
4.13 총선의 특징은 국민이 정치지형을 스스로 결정했다는 데에 있다. 지금까지 설정된 정치지역에 국민들이 짜깁기 당했던 것과는 판이 달랐다. 지식인들이 절망하고 분열되어 있을 때, 국민들이 멋지게 정리한 한 판이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것처럼 ‘대중이 역사발전의 동력이다’는 것을 확인해준 그야말로 선거혁명이었다.

3. 보수세력의 장기집권 플랜이 파탄났다
많은 사람이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80~200석 정도의 득표를 하여 이원집정제를 통한 장기집권을 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처에서 이런 말이 떠돌았다. 만약 총선에서 패배했더라면 향후 민중의 삶과 관련되는 여러 정책, 대선, 통일 문제 등이 수렁에서 헤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국민들이 절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4. 참여와 희망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사회적 시스템과 풍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치권력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정치권력으로부터 무관할 수 없다. 산속에 은거해도 그렇고 농사를 지어도 그렇다. 정치권력을 바꾸는 것도 여러 방법이 있으나 일상적 행위로서는 선거가 가장 유력하다. 수많은 희생이 따르면서 수십만 명이 시위를 벌여도 끄떡없었던 정권이 4.13 총선으로 권력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참여가 얼마나 소중한 지 새삼 일깨운다.

5. 대선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일어날 것이다
‘권력무상(勸力無常)’이란 말이 있다. 조중동에서 벌써 현 정부의 레임덕을 우려하면서 지나온 자취를 비판하고 있다. 권력의 속성은 그만큼 무자비하다. 그리고 선거혁명이란 말을 서슴없이 던지고 있다. 다음 대선을 의식할 말이기도 하겠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의회권력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이 한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노동개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말을 확대하면 기존의 자기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 관철시키겠다는 뜻이다. 선거패배를 자신에 대한 국민적 심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국민이 자신을 배반했다고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친박, 비박, 진박, 반박, 신박 등 청와대를 둘러싼 박덩쿨로는 청와대에 몰아치는 북풍한설을 막기가 역부족일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하게 현 정부는 식물정권이 되어갈 것이다. 

여권 내부의 권력다툼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친박세력이 최경환을 중심으로 수습하여 김무성을 중심으로 하는 비박세력과 타협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 경우 친박의 유력한 대권주자인인 오세훈이 무너진 마당에서 비박의 수장 김무성이 자연스레 대권주자로 떠오르겠지만 친박세력이 반기문 씨를 영입하여 대권후보로 세울 수 있을지도 지켜볼 일이다. 새누리당이 분열될 가능성마저 있다.

6. 야권의 정치지형도 변할 가능성이 있다
<더민주당>은 최악의 분열을 딛고 선거에서 승리한 여세로 비교적 순탄한 행로를 가리라 예상되지만 과연 문재인이 순탄하게 대권주자가 될 것인가는 판단키 어렵다. <국민의당>의 안철수는 분명 대권주자로 나서겠지만 호남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역시 알기 어렵다. 이 경우 여권이 분열되지 않는 한 야권분열의 국면에서 또 다시 힘겨운 선거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두 야당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원집정제를 통한 헌법 개정도 어려울 것이고, 노동개악도, 국회선진화법도, 최경환이 의도하고 있는 양적완화도 의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은 호남정서를 무시하고 부화뇌동하기 어려울 것이고 <더민주당>도 더 후퇴할수록 더욱 나락으로 떨어져 대권의 꿈은 더 멀어질 것이다. 4.13 총선의 민의가 벌써부터 이렇게 무섭게 작동하고 있다.

7. 87년 체제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일어날 것이다

■ 범진보세력에게 바란다

누가 뭐래도 이 땅에서 진보의 핵심키워드는 ‘평화통일’과 ‘민주주의’이다. 이 두 사항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처지이다. 통일이 없이는 반공과 사대숭미(事大崇美)에 얽매어 민주주의의 발전에 근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민주주의가 없는 통일은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위 두 사항이 관철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에서 근본적인 변혁을 상상하기 어렵다.

녹색당에서는 ‘탈핵’과 ‘기본소득제’를 내세우고, 노동당에서는 ‘노동문제’를, 민중연합당에서도 뭔가 의미 있는 이슈를 내놓고 있다. 당연히 지지받아야 할 사항들이지만 현재와 같이 수구집단이 권력을 잡은 상황에서는 어떠한 개별적 이슈도 선전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 현 정권이 원전을 포기하겠는가, 노동개악을 중단하겠는가, 기본소득을 받아들이겠는가? 이와 같은 사항들은 정치적 힘이 있을 때만 관철이 가능하다. <민중연합>을 넘어 <국민연합>으로 나아가면서 정권을 잡고 그 정권의 당파성을 장악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노동자, 농민으로 상징되는 민중의 독자적 힘으로는 한국사회에서 권력교체를 이루어낼 수 없다. 정파적 사유와 이해를 넘어 통합 또는 연대를 하여야만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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