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 선암사 목장승

선암사 목장승은 선암사 입구의 동부도전과 승선교 사이에 있다. 선암사로 향하다 동부도전을 지났을 때 진입로의 왼쪽과 오른쪽에 눈망울과 주먹코가 툭 불거지고, 온통 붉은 색으로 위엄을 갖춘 한 쌍의 장승이 마을 앞 장승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가슴을 내밀어 방문객들에게 무엇인가를 일러주려는 듯 서 있다.

이 장승이 세워진 것은 조선 말기의 갑자년(1804년이나 1864년)으로 전해온다. 우리나라의 유명 장승들을 조사하여 기록한 장승에 관한 책에도 선암사 목장승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선암사 목장승 방생정계
▲ 선암사 목장승 호법선신

‘장승’은 목장승과 석장승이 있다. ‘벅수’라고도 하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토속신앙에서 유래되는데,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쌍으로 만들어 마을 어귀에 세워 두는 것이 전래풍습이다.

18~19세기에 장승(벅수)이 전국적으로 유행하여 대부분의 절에서도 입구에 장승을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 세웠다. 목장승은 일제강점기 이후 대부분 사라지고, 마을에만 일부 남아있었으나 절에는 유일하게 선암사에서만 보전되고 있다.

대중과 가까이 더불어 구도하며 전통을 보전해 온 선암사의 종파적 특성이 장승을 지켜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일반 장승은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으로 불린다. 천신과 지신으로부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보호받고자 하는 경계의 지킴이라면 선암사 목장승은 오른쪽에는 ‘방생정계’, 왼쪽에는 ‘호법선신’이라 표기되었다. 맑고 깨끗한 부처님의 신성구역임을 알리고, 경계를 지키는 구실을 하는 것이 일반 장승과는 다른 점이다. 선암사 목장승은 1970년대까지 옛 장승이 그대로 서 있었으나 썩게 되어 뽑아내고, 1987년 9월 선암사에서 새롭게 만들어 세운 것이다.

지금 설치되어 있는 목장승을 직접 제작한 목각기능인 심남섭(순천시 매곡동에 있는 선진공예사)옹에게서 2006년에야 복원 당시의 상황과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선암사에서는 절 입구의 상징물인 옛 장승이 심하게 부식되어 더 이상 세워둘 수 없게 되자 새로운 장승으로 교체하려고 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 오다가 1984년에 복원키로 결정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승 제작용 목재인 대형 밤나무(장승 제작용 나무로는 옛부터 비바람에도 잘 썩지 않는 밤나무를 사용했다고 한다.)를 조계산의 선암사측 전역에서 겨우 구해 벌채하여 공마당 안쪽 숲 속에 보관하고 있을 때 종파 분쟁으로 대립 중이던 상대 사찰(송광사를 지칭)의 감시원에게 고발되어 나무를 옮기고 감추는 과정에서 1-2자 가량이 짧아졌다.”고 한다. 조각의 원형은 사라진 옛 장승을 해체하기 전에 자신이 촬영하여 보관 중이던 사진을 참고하였다고 낡은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도 장승만 생각하면 서운한 것은 받침을 제작하지 못한 일이라고 한다.

“받침돌로 알맞은 둥근 돌을 동암 근처에 보아두고(있으므로) 만들려고 하였지만 당시 절의 재정이 좋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바닥에 바로 세우고 말아 못내 아쉽게 생각 된다”는 것이다. 그는 “칼 잡는 것이 천직이라 팔십이 넘도록 여태껏 칼자루를 놓지 못하고 있다”며 주름진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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