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유혜자 옮김 / 사계절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몹시 방어적인 아이인 주인공 할링카. 아빠도 엄마도 없어 이모의 보호를 받고 지내다가 요양원과 보육원을 거치면서 세상에 대한 냉소와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차게 된다. 할링카 뿐만 아니라 보육원에는 저마다 조금씩의 아픔을 안고 있는 아이들이 한 방에서 부대낀다.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죽여 우는 레나테, 성에 일찍 눈뜬 로즈마리, 이지적이며 냉소적인 엘리자벳, 자신의 소유물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도로테아 등 아이들은 대부분 깊은 상처를 안고 제각기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 살아간다. 그리움은 영혼이 허기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기방어적인 태도로만 일관하던 할링카는 어느 날 친구 레나테와 마음을 열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 각자가 안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며 행복을 느끼고 나눈다. “행복은 의자를 내줄 때에야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을, 행복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의자를 내가 먼저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으로 깨닫게 된다.

어린이책의 일반적 주인공과는 다르게 할링카는 우리가 생각하는 착하고 순진한 소녀가 아니다.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건, 영혼이 허기진 할링카의 소원은 보육원에서 나가 로우 이모와 함께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이모는 미군 구내식당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는데다 직장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법적 후견인 자격을 얻지 못한다. 대신 이모가 차비를 보내줄 때마다 한번씩 이모 집에서 자고 오는 일이 최고의 기쁨이다. 그러나 몸이 아픈 이모가 일을 쉬어 돈을 보내지 못하자 할링카는 두 달 넘게 집에 가지 못한 상태다.

 

할링카는 기금 모금 행사에서 상품을 타기 위해 함께 있는 아이들을 경계한다. 모금함을 들고 나가면서 불쌍함을 강조하기 위해 얼굴에 목탄을 칠하면서 자신의 모금함에 돈을 넣는 어른들을 비웃기도 한다. 더구나 몰래 모금함의 잠금장치를 뜯어내고 모금된 돈을 훔쳐 ‘완전범죄’를 저지르고 모금액 경쟁에서 일등까지 하게 되면서, 그 덕분에 상품으로 공원을 산책하고 멋진 레스토랑에 갈 수 있는 행운까지 잡는다.

그때, 그 소녀에 대해 반응하는 그 주변의 어른들, 특히 할링카가 평소에 늘 보육원을 떠나지 못하고 외롭게 살며 아이들을 훈계하는 일로만 갇혀 산다고 무시하던 우어반 사감의 태도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할링카가 반한 공원의 멋진 조각상 앞에서 우어반 사감은 왜 모금함을 열었느냐고, 돈을 꺼냈냐고 묻는다. 우어반 사감이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할링카는 궁금해서 그랬다는 뻔한 거짓말을 한다. 그에 대해 그녀는 알았다고 다시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겠다고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레스토랑으로 함께 간다. 그 순간 할링카는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스스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값을 치루기로 다짐한다. “신은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이자와 함께 대가를 치르게 한다”고 했던 로우 이모의 말을 떠올리며 그럼에도 이곳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한번 와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할링카의 말대로 결혼도 못하고 보육원에서 평생을 갇혀 일하는 그 답답한 사감의 행동은 절대적 믿음을 가졌던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어른인 나는 일상 생활에서 저 어리고 어리석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 애들이 잘못 될 거라고, 도둑질을 하거나 한밤중 몰래 서로의 침대 속에 기어 들어가는 여자 아이들의 행위와 머리끄뎅이 드잡이하는 몸싸움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아이들에 대해 선악을 판단하고 그를 교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고 좀 우아한 방법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할링카의 섬세한 감정들을 함께 따라 느끼게 되고, 그런 생각들은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하게 한다.

아이는 어떤 존재인가? 아이의 삶은 그저 좋은 어른이 되는 준비과정인가? 이 사회에서 교육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함께 하는 책읽기와 토론은 우리가 외부에 대해 반응하고 스스로의 것으로 믿었던 나의 생각의 근거들을 다시 한번 뒤집어보게 한다. 그와 같은 사유의 방식들은 나의 생각들을 더욱 섬세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나에게 앎의 즐거움, 공감의 즐거움을 더해 우리에게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어제의 나보다 좀 더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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