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살림의 여왕, 김지현 씨


 

우리는 가끔 사극에서 고운 여인을 보곤 한다. 그 여인들은 아픈 사연을 가슴에 꾹꾹 담아두고 좀처럼 꺼내놓지 않는다. 그 여인들은 하나같이 마음씨도 곱고, 솜씨도 좋다. 한량 같은 서방님 과거공부 뒷바라지 하느라 삯바느질을 밤새도록 하는 여인은 불평 한 번 하지 않는다. 신우대 흔들리는 장독대 너머로 다듬이소리 들릴 때쯤이면 어머니들은 눈물 흘리며 혀를 끌끌 차신다.

이 대목에서 뜬금없는 호기심이 생긴다. 바느질 저거 아무나 못하는데… 나도 배워 볼까? 이참에 퀼트 가방이나 만들어보자.

 ▲ 47년 순천지기 김지현 씨. 살림의 여왕 카리스마가 엿보인다.
바느질 호기심에 퀼트 공방에 갔다가 살림 잘하기로 소문난 김지현(사진) 씨를 만났다. 이분 보통내기가 아니다. 바느질, 뜨개질, 원예, 요리 그리고 DIY가구까지 못하는 게 없는  주부의 신이다. 집에 들어서자 크지 않은 거실이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잘 꾸며져 있고, 고양이 세 마리가 동거를 한다는데도 바닥에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다. 잘 하는 것도 많고 아는 것은 왜 그리 많은지, 살림이라곤 물고기 밥 주는 것 빼곤 아는 게 없는 손이 부끄러워졌다.

그녀가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는 DIY가구다. 책상, 서랍장, 티 테이블, 옷장까지 대부분 직접 수리하고 색칠까지 해서 늘 새로운 분위기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입소문이 나서 이사 후 새로 입주하는 가정에 집 꾸며주기 아르바이트도 가끔 한다. 무엇보다 지현 씨는 비싼 소품을 구매하지 않고 집에서 쓰던 양동이, 바구니, 낡은 상자를 활용해 새로운 소품으로 만드는데 솜씨가 전문가 못지않다. 이사철이면 멀쩡한 살림이 버려지곤 하는데 지현 씨를 만나면 버려진 물건들이 어느새 빈티지 소품처럼 변한다. 과연 신의 손이다.

그녀는 결혼 17년차,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평범한 주부이다. 살림을 왜 그리 잘하는지 묻자 특급 비밀을 알려준다.

▲ 뜨개질, 바느질하는 손끝이 야무지다.
“사실은 친정어머니 때문이에요. 어머니가 4남매의 큰딸이었던 저에게 집안일 맡기고는 놀러 다니곤 하셨지요. 일찍부터 집안 살림을 시작한 탓에 손이 좀  빨라요. 자연스레 살림전반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지요. 그때는  엄마가 정말 싫었는데… ^^ ”

어머니는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지현 씨가 결혼한 이듬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시고 미리 살림을 가르친 것은 아닌지 가끔 생각해봅니다.”
 

▶ 인테리어에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신혼 때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었다. 어머니가 임신 중에 돌아가시자 정 떼기 하려고 그랬는지 사주신 가구들이 싫증나고 새 가구로 바꾸고 싶어졌다. 처음엔 앞뒤 계산하지 않고 그저 새 가구 사는 일만 했었다. 그러다보니 지출이 커졌고 집에서도 그만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돈 안들이거나 적게 들며 꾸미는 방법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DIY 가구를 알게 되었다. 지금 집에 있는 가구들도 대부분 동생과 함께 만든  것이다.
 

▶ 인테리어는  감각이 필요한 것 같다. 원래 미적 감각이 좋았나?
전혀 아니다. 학창시절 미술점수 ‘꽝’ 이었다. 처음에는 잡지책 보며 배웠고 온라인이 활성화 된 후엔 온라인 카페에서 많이 따라했다.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 늘  새 가구를 만들면 집에 가구가 쌓이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새 가구를  만드는 이유는 기존  살림이 싫증난 탓이니, 쌓아둘 필요가 없다. 헌 살림이 나간 빈자리에 새 살림을 채우는 것이 가장 큰 원칙이다. 그리고 나가는 소품도  버리지 않고 필요한 이웃에게 알려서 기증한다. 

대부분 재활용, DIY 가구와 바느질 소품으로 꾸민 집. 정리수납과 소품 만들기 소모임도 있다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 배워보면 좋겠다.
 

▶ 새내기 주부들에게 도움이 될 Tip 하나를 알려준다면?
인테리어의 핵심은 간결함이다. 1년에 두 번 이상 사용하지 않는 옷과 물건은 과감하게 버리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기증한다. 적당히 빈 공간에 화분이나 소품 한 두 개로도 집안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1. 집을 예쁘게 하려면 우선 정리와 수납을 먼저 한다.
 2. 과감하게 버린다.
 3. 사지 말고 재활용하라.
 

▶ 순천이 고향인가?
47년 째 순천지기이다. 저전동 토박이다. 어린 시절 순천여중 앞 놀이터에서 놀았다. 동산여중 다닐 땐 아버지께서 자동차로 등하교를 시켜주셨다. 친구들과 시내버스가 타고 싶어서  해촌가는 버스 (일명 왕조버스)를 가끔 탔었는데, 그때는 동산여중 앞길이 비포장 도로였다. 연향동의 옛 모습이 다 기억난다. 가끔은 오래된 것이 그립기도 한데, 낡고 오래된 것이라고 버려져야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녀의 집 꾸미기에는 원칙이 있다.
1. 새 것 사지 않기
2. 낡은 것 고쳐 쓰기
3. 이웃과 나누기

지현 씨는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다.  살림에도  철학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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