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도 돼요?』/ 고대영 글, 김영진 그림 / 길벗어린이

어린이는 결코 부모의 물건이 되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어느 기성사회의 주문품이 되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네는 훌륭한 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저는 저대로 독특한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물건처럼 이렇게 만들리라, 이렇게 시키리라 하는 부모나, 지금의 사회의 필요에 맞는 기계를 만들리라 하여 그 일정한 판에 찍어내려는 지금의 학교교육과 같은 것 잘못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코 우리는 이것이 옳은 것이니 받으라고 무리로 강제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저희가 요구하는 것을 주고 저희에게서 싹트는 것을 북돋아 줄 뿐이고 보호해줄 뿐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네에 대하는 태도는 이러해야할 것입니다. 거기에 항상 새 세상의 창조가 있을 것입니다.
<소파 방정환의 아동교육 운동과 사상> 중에서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그림책『싸워도 돼요?』에서 우진이는 한솔이가 공을 뺏겼기 때문에 축구에서 졌다고 한솔이를 구박을 합니다. 한솔이 편을 드는 병관이에게도 때릴 듯이 주먹을 들이 대자 병관이는 우진를 이기고 싶습니다. 병관이는 호신술을 연습해서 한솔이를 괴롭히는 우진이 팔을 비틀어서 우진이를 울립니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은 병관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병관아, 그런 일이 있으면 선생님께 이야기 해야지. 폭력을 함부로 쓰면 안 돼. 벌로 반성문 써.” 

병관이는 자신과 한솔이를 꼬맹이라고 놀리고 자꾸 시비를 거는 우진에게 어떻게든 맞서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호신술도 열심히 연습하고 아빠에게 자신을 때리려고 하는 아이와 싸워도 되냐고 묻기까지 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 보려는 병관이의 노력에 응원을 보냅니다. 그렇다고 큰 덩치로 작은 친구들을 위협하는 우진이를 더 센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병관이의 해결방법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병관이한테 선생님은 ‘선생님에게 말해서 선생님이 해결하도록’하라고 합니다.

아이들끼리 문제가 생겼는데 선생님이 나서서 해결해 주겠다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는 해결을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우진이가 병관이에게 주먹을 들었을 때 선생님이 나타나 우진이를 꾸짖고 한솔이를 달래줍니다. 선생님이 끼어드는 바람에 한솔이와 병관이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우진이도 선생님이 없는 곳에서 계속 병관이와 한솔이를 놀리고 시비를 겁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관계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병관이는 자기가 맞서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결론에서 또다시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라며 뭔가 스스로 해 보려고 한 병관이를 오히려 나무랍니다.

선생님뿐 아니라 누나와 아빠도 병관이 문제를 자신들이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합니다. 병관이가 누나한테 우진이 이야기를 했을 때 지원이는 “걔가 너 때렸어? 누나가 혼내 줄까?”라고 합니다. 아빠도 싸워도 돼냐고 병관이가 물었을 때 “놀린다고 싸우면 어떻하니. 참을 줄도 알아야지... 주먹은 정의로운 일에만 쓰는거야.”라고 정답을 가르치듯 이야기 합니다. 특히 아빠는 많은 상황에서 병관이보다도 훨씬 주도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제안하고 행동합니다. 마치 아빠가 주인공인 것처럼 말입니다. 병관이가 자기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해결해 나갈 겨를도 없이 아예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거나 해결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병관이의 성찰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보면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시련을 겪고 이겨내면서 성장을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스스로 애를 쓰기 때문에 도움을 받습니다. 아이들 역시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스스로 문제를 만나고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어린이 시기를 성장기라고 규정하고 어린이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교육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중에 무언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 쯤으로 생각하면 어린이를 어른에 비해 미숙하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는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린이로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친구로서 어린이를 무시하지 않고, 어린이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지 않고, 스스로 겪고 배우고 지혜를 발휘하는 그 놀라운 능력을 인정하는 멋진 어른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