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어김없이 논쟁거리가 되는 것이 지역주의이다. 영호남이 뚜렷이 갈린 구도에 그 결집력이 어느 정도인지, 충청의 선택이 무엇인지에 따라 선거 결과가 정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망국적이라면서도 정치권력은 이것을 최대한 활용하거나 악용하는데 몰두했고, 언론도 이 프레임에서만 선정적인 기사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정책선거를 외면해왔다.

그런데 올해 4․13 총선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호남에 기반한 정당이 두 개로 쪼개지면서 지역주의보다는 호남 민심이 관전 포인트가 되었다. 모두들 호남 상황을 지켜보느라 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구가 획정되지도 않은 기이한 사태조차도 관심 밖으로 밀렸을 정도이다.

오늘의 호남정치 사태는 그야말로 사태 수준의 비상 상황이다. 사필귀정의 측면도 있지만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지려고 이러는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정신차리고 보면 이번 선거 역시 지역주의 틀 안에서 모든 것이 결정될 게 뻔해 보여 절망스럽다.

벌써부터 청와대는 대구 물갈이를 통해 대통령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고, 새누리당은 차기 정권을 영남에서 재창출하기 위한 교두보 확보로 이번 총선의 판을 짜고 있다. 선거구 획정이 끝나고 투표일이 가까워지면 야권연대가 가시화 될 것이고, 그럴수록 여권의 ‘지역주의 팔이’는 활개를 칠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지역주의에 발목을 잡혀 지난한 파행정치를 견뎌야할까. 이런 짜증의 틈을 헤집고 근래 신선한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영남의 지역주의와 호남의 그것이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런 만큼 지역주의에 대한 평가와 대처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와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로 구분하는 것이 그것이다. 근대시기 팽창적 제국주의가 자국의 민족주의를 에너지로 삼은 것과, 침략을 당한 나라가 저항적 민족주의를 일으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 근원적 성격을 달리하는 것처럼 지역주의도 그렇다는 것이다.
5․18 살육현장을 목도한 지역의 90% 결집과, 5․18 살육을 악용해 집권한 권력지역의 80% 결집을 어떤 것이 더 지역주의인가 비교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지역주의 양비론이었다. 그리고 이 양비론의 최대 피해자요 희생자는 호남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할까. 우리는 억울하다고 목 놓아 울어볼까. 영남더러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 다시 잡아보자고 애원해볼까. 이도저도 가망 없을 일이니 그냥 이렇게 숙명처럼 살아갈까.

프레임은 깨뜨려 없앨 수도 있지만 외면하고 무시해서 없앨 수도 있다. 영호남의 지역주의가 캠페인 한다고, 법률로 막는다고 하루아침에 없어질 대상은 아니다. 정치권력의 고리가 견고하게 얽혀있지 않은가.

이 시대 영호남 지역주의보다 더욱 근본적 문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모순관계이다. 수도권은 빠르게 비대해져가고 비수도권은 그만큼의 속도로 메말라가고 있다. 집권지역인 영남도 비수도권으로서 똑 같이 겪고 있는 고통이다. 대구경북의 ‘대경벨트’도, 부산울산경남의 ‘부울경벨트’도 해보지 못해 ‘대경부울경벨트’를 만들어 수도권과 맞서려고 몸부림 중이다.

충청권과 강원권은 스스로 지방 정체성을 포기하고 수도권에 편입해 숟가락을 얹기 위해 발버둥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수도권시대인 것이다. 시대흐름이 이렇다면 호남도 지역주의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수도권에 대항할 전략적 판짜기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잖아도 왜소한 광주, 전남, 전북이 이렇게 저렇게 갈라지고 반목하는 것이 과연 고질적인 지역주의 극복과정일까? 혹시 패권적 소아주의는 아닐까? 이럴 바에는 차제에 광주, 전남, 전북이 하나로 합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 4․13총선에서 활발히 다뤄져야할 의제가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