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종삼
순천시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강원도의 유일한 예술영화관인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 이달 29일을 끝으로 임시휴관하게 됐다. 건물 임대계약을 연장하지 못할 만큼 재정상황이 악화된 게 휴관의 이유이다. 재작년엔 거제 아트시네마가 문을 닫았고, 작년에는 대구 동성아트홀이 폐관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났다. 서울 북촌의 ‘씨네코드 선재’도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작년 11월 관객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밖에도 많은 예술영화 전용관이 심각한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고사하기 직전이다.

예술영화 전용관이 이처럼 위기상황으로 내몰린 데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행해온 ‘예술영화 전용관 지원 사업’ 중단이 결정적이다. ‘예술영화 전용관 지원 사업’은 예술영화 상영 기회를 확대하고, 한국영화의 다양성 확대를 위해 2002년부터 시작됐다. 영진위가 선정한 300~500편의 예술영화 중 극장이 작품을 선택해 연간 219일 이상 상영하고, 그중 73일은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예술영화 전용관에 운영보조금을 일부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그러나 영진위는 이 사업을 폐지하고, 작년부터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을 새로 도입했다.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은 영진위의 위탁을 받은 ‘한국영화배급협회’가 선정한 한국 독립예술영화 48편 가운데 24편을 골라 관객이 많은 평일 저녁과 주말(이하 프라임타임)에 한 달에 두 편씩 의무적으로 상영하는 극장에만 지원금을 배분하는 것이다. 기존 극장 운영을 지원하던 것에서 특정한 영화 배급을 지원하는 것으로 내용이 바뀌었다. 이처럼 바뀐 이유로 영진위는 “기존 사업은 극장이 지원금을 극장 운영비 위주로 사용하면서, ‘극장 연명책’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해외 예술영화 중심의 프로그램 편성으로 인해 정작 한국 예술영화가 외면 받는 등 그 취지가 많이 퇴색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은 대다수 예술영화 전용관과 독립영화인의 외면 속에서 시작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이 사업은 그동안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운영해온 예술영화 전용관의 프로그램 자율성을 침해하고, 관객의 영화 선택기회를 박탈할 우려가 크다는 게 독립영화계의 중론이다. 각 예술영화 전용관이 프라임타임에 같은 영화를 상영하는 일이 빈번할 것이며, 한해 수백편의 독립영화가 만들어지는 현실에서 선정된 48편의 영화만 지원하게 됨으로써 독립예술영화의 다양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거라는 의견도 있다.

더구나 불필요한 외부 위탁단체에게 총 예산의 10%를 지급함으로써 그렇잖아도 부족한 예산의 낭비를 초래하게 되었고, 위탁기관으로 선정된 ‘한국영화배급협회’도 비디오물의 유통 등 주로 부가판권 매체의 저작권을 관리해 온 ‘한국영상산업협회’의 후신으로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식견과 전문성이 부족하다. 이 협회의 내부인원으로 선정위원회가 구성돼 48편의 영화가 선정될 경우 사업 투명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무엇보다 이 사업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장치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독립영화계 내부에서는 영진위의 새로운 사업 추진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 ‘다이빙벨’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다룬 작품이 스크린에 걸리는 경로를 원천 차단함으로써 이 사업이 보이지 않는 검열로 악용될 거라는 예상이다.

예술영화 전용관은 그동안 멀티플렉스와 상업영화의 공세에 맞서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지켜온 최후의 보루였고, ‘예술영화관 지원 사업’은 그 생명줄이었다. 이제라도 영진위는 중단된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을 재개하고, 영화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독립예술영화 진흥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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