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태웅
시인
영화 ‘마지막 4중주’를 보았다. 2013년 8월 26일 강화도에서 한국작가대회를 마치고 광주전남 동료들이 전세버스로 돌아가고 나는 수유리에 사시는 어머니를 뵐 겸 서울로 따로 나와서 광화문 시네큐브에 가서 이 영화를 보았다.

좋은 영화는 머릿속의 실타래를 풀어준다. 영화는 테세우스를 구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와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때로는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오스가 묶어놓은 복잡한 매듭을 단칼에 잘라 아시아 제패의 결기를 다진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전자는 크레타 섬의 미로를 빠져나오게 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풀이와 같은 끈질긴 해결 방안이며 후자는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단칼에 해결해 버리는 소위 ‘쾌도난마(快刀亂麻)’식 해결방안이다.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어떤 상황에 놓인 주체가 선택할 문제이지만 나로서는 늘 전자를 올바른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영화 ‘마지막 4중주’의 현악4중주단 ‘푸가’의 연주자 4사람은 모두 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놓인다. 그 네 사람의 상황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처할 수 있는 개연성을 지니기에 관객에게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인가 하는 고민과 사색에 빠지게 한다. 나는 그 중에 로버트가 처한 상황이 가슴에 먼저 다가왔다.

그는 늘 제2인자였고 아내마저 그 제2인자로서의 자신을 객관화시키려 했고 제1인자는 아내의 옛 연인이었다. 제1인자인 다니엘은 단 한 소절에서도 실수를 용납지 않는 완벽주의자였다. 그의 재능은 탁월했고 그의 의지는 집요했다. 로버트는 다니엘이 틀에 박힌 연주를 한다고 비난하면서 완벽하지만 틀에 박힌 연주에는 열정이 없노라고 다니엘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것은 로버트 자신의 생각일 뿐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도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영점 사격지의 표적처럼 딱 하나일까. 아니면 표적 주변에 박힌 수많은 총탄구멍들까지 다 포함하는 것일까. 진실은 딱 하나일까. 아니면 진실해지려는 모든 노력들도 진실에 다 포함되는 것일까.

나는 진실해지려는 노력들은, 실은 많은 허위와 가식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해지려는 노력은, 실은 가차없이 진실을 선택하지 않고 현실의 여러 여건들을 내세우면서 진실을 선택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유보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로버트는 홧김에 집을 나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플라멩고 댄서와 외도를 한 것이 아내에게 들키고 만다. 로버트는 솔직하게 플라멩고 댄서와의 하룻밤 외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아내 줄리엣이 로버트의 용서를 받아들이냐 하는 것은 별문제로 치고 영화의 초반부에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못하는 찌질이 예술가로 보이던 로버트가 한 단계 고양된 인간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는 유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단계 고양된 인간으로 관객에게 다가서게 된 것이다.

진실은 유보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늘 위태롭다. 그것은 위태롭기 때문에 늘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진실의 힘이야말로 우리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다.

김진숙은 백척간두 철탑 위에서 외로웠고, 권은희는 집권세력의 주구들에게 둘러싸여 협박을 당했지만 둘은 그 어떤 것도 유보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의 끈을 얻을 수 있었다.

정약용은 세상에는 두 가지의 척도가 있다고 했다. 옳고(是) 그름(非)과 이로운가(利) 해로운가(害)가 그것이다. 是非利害. 이 네 가지가 서로 결합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옳으면서도 이로운 것이라 했다. 두 번째는 옳으면서 해로운 것이라 했다. 세 번째는 그르면서 해로운 것이라 했다. 그리고 정약용은 가장 안 좋은 네 번째는 차마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것은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우리의 입이 더러워지지만 어쩔 수 없이 가장 좋지 않은 네 번째는 무엇인가. 바로 그르면서 이로운 것이다. 못된 짓을 하면서 제 잇속을 챙기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못된 짓을 하면서 제 잇속을 챙기는 일을 저지르는 자는 차마 입에도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그 차마 입에도 올릴 수 없는 자들이 대한민국의 상층부를 장악해서 온갖 패악질을 해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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