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호
순천YMCA 간사
2014년에 문창극이라는 국무총리 후보자의 강연 내용이 논란의 불씨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교회 장로이기도 한 그는 조선말-개화기-식민지-해방-전쟁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를 자기만의 방식대로 풀어나갔다. 그런데, 강연 전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문창극은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발생하는 사건을 일종의 ‘숙명론적 사관’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례로, 문창극은 귀츨라프 선교사와 달레 신부 등의 기록을 인용하며 조선 민족이 게으르고 더러운 족속이었다는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여과 없이 공유하고 있다. 문창극은 이들의 기록을 근거로 시종일관 ‘게으른 조선인’ 담론을 펼쳐 나갔는데, 이 지점에서 그가 조선인의 게으름이 망국의 원인이 되었다는 식민 사관의 논리를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창극의 역사 인식에서 주목할 점은 망국의 원인으로 양반들의 무능과 게으름을 지목한 사실이다. 그는 일본에 유학을 간 많은 양반들이 사회학, 철학, 정치학 등을 공부하면서 그들의 ‘게으른 혀’를 굴리는 데에만 시간과 돈을 허비했다고 비판하였다. 문창극은 이들이 공학이나 의학 등 좀 더 실용적인 학문을 택하지 않고 “혓바닥 놀려서 게으르게 먹고 살려고” 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청일전쟁 이후 조선에 진출하여 일본의 식민 지배를 쉽게 하기 위해 조선의 타율성을 역사적으로 밝히는데 주력한 기쿠치(菊池謙讓)의 논리와 비슷하다.

여기에서 문창극의 고난 사관은 ‘게으른 조선인’ 담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문창극이 볼 때 조선의 멸망은 조선인의 게으름에서 기인하였다. 따라서 조선의 멸망은 조선인의 게으름을 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고난이라는 것이 문창극의 설명이다.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라는 문창극의 발언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문창극의 고난 사관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식민 사관을 배경으로 게으른 조선인들을 ‘훈육’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식민사학은 해방 이후에도 주류의 역사인식에 주요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덕일 류의 역사서술에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존의 역사학계가 여전히 식민사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에도 식민사관은 계속되고 있다”는 이덕일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해방 후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의 극복을 최우선의 과제로 설정하였다. 특히, 식민사학의 양대 논리인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반박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체성론은 한국사가 보편적인 역사발전의 단계에서 고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제 시대의 마르크스주의 사학자였던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를 통해 과거의 전통에 이미 자본주의의 맹아가 있었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논지는 1960년대에 이르러 김용섭, 강만길 등을 통해 발전하였다. 이들은 정체성론을 실증적으로 반박하기 위해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사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농업의 경우 경영형 부농이 출현하였고, 광업과 수공업에서 작업장 내의 분업이 이루어졌던 현상을 근거로 조선후기에 자본주의 맹아가 출현하였음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역사서술을 역사학계는 ‘내재적 발전론’이라고 부른다.

내재적 발전론은 일제강점기에 생겼던 역사학계의 이론적 공백을 메우고 새로운 역사 인식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민족 논리로 비판이 가능했던 타율성론에 비해 실증적 자료와 체계적 연구가 뒷받침되어야만 반박이 가능했던 정체성론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물론 내재적 발전론의 한계도 많다. 무엇보다 내재적 발전론은 민족주의적 가치에 집착한 나머지 자본주의 맹아론을 보고 싶은 부분에서 추출한 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자본주의 지향의 근대화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학자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 낸 지성의 유산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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