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8일 자 신문에 군 가혹 행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소재로 4편의 논픽션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중 한편이 이 지역에 사는 이성인 씨의 글이라는 것을 알고는 인터뷰를 시도해 보았다. 망설이던 성인 씨에게 조합원 박종택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 “사람이 사람 만나는 것처럼 재미진 일이 있겠는가?”를 전달했더니 시간을 허락해 주었고 그의 군 생활과 제대 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스물두 살이 되던 해 해군에 입대해서 여수 해양경찰 산하 전투경찰이 되었다. 7주간의 해군 훈련소 생활은 그를 군인으로 만들었다. 2006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당시 청춘들의 주적은 스위스였지만, 군인에게 주적은 북한이 이었다. 입대하기 전 전태일과 체 게바라 평전을 밤새워 읽고, 마르크스, 촘스키 등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가슴이 뜨거웠던 대학생은 단 7주 만에 친미반북주의자가 되었다.

훈련이 끝나고 소형 함정에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다. 배에 도착하자마자 합리성의 유무 따위를 따질 겨를도 없이 왼 다리 발차기 한 대, 뺨 두 대, 주먹으로 복부 한 대를 맞으며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종의 신고식이었다. 신병의 임무는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서 밤 10시에 취침할 때까지 밥, 청소, 빨래와 온갖 허드렛일이었다. 욕설과 구타의 반복은 그저 일상이었다.

파도가 많이 쳐서 중심을 잡기 어려웠던 어느 날 뱃멀미를 했다. 밥때가 다가왔으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손가락을 베었는데 구타가 두려워 김치에 손을 담가버렸다. 두려워서 손가락이 아리지도 않았다는 그는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대학 시절 패기만만하던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문장은 오직 다섯 가지 말 뿐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사고의 틀이 정지된 이 공간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매일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 그림 김보통 만화가 (사진출처 한겨레)

전역 후 전경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날 가장 구타를 많이 했던 선임이 사과를 했다고 한다. 자신이 철이 없었다고 용서해 달라고  몇 달 동안 악마였던 그는 어느새 여리고 정 많은 청춘이 되어 있었다. 무엇이 갓 스물이 된 남자를 악마로 만들었을까? 한겨레신문의 공모 소식을 보고 자신과 군 생활을 마친 남성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공모전에 수상이 되었다는 소식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묻혀두었던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받을 상처는 피해자 가해자 모두의 몫이다. 이제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그는 여전히 사회가 군대와 같다고 말한다. “삶의 과정엔 어디에나 군 생활과 비슷한 아픔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군대 이야기는 가족, 학교, 직장 등 위치만 바뀐 채 계속되는 모든 사람의 상처에 대한 고민입니다.” 성인 씨와의 짧은 만남은 풀지 못한 숙제였고 더 무거운 한숨이 되었다.

군 생활을 해본 분 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고 공감한다는 비슷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여성인 필자는 그 아픔을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궁금하다. 스스로를 죽여야만 사라질 것 같은 이 지독한 ‘독’의 근원은 어디인가? 그래서 결국 탈영과 자살로 젊은이들을 끌고 가는 잔인함의 시작은 무엇일까? 사람은 누구나 가장 저급한 내면의 폭력성을 숨기고 있다. 단세포만 견딜 수 있다는 그곳에서 인간의 폭력성이 감정으로 표출되는가 보다.

군대는 단순함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순종형 인간을 요구하고 우리의 청년들을 그렇게 훈련시키고 있다. 돌이켜보면 일본 강점 사관, 친일세력을 끊지 못하고 이어진 군사독재 정권이 우리의 청년들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보았고 왜곡된 주입식 교육을 시켰다. 그것은 비판적 사고를 허락하지 않으며 명령과 순종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평면적 인간만 허락한다. 21세기에 우리의 청년들은 이제 더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국방이 국민의 의무라면, 국가의 의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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