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현
순천여고 교사, 순천대 강사
가깝게 지내는 다섯 부부가 있다. 생각이 비슷하고, 원만한 사람들이라 자주 어울려 즐겁게 놀았다. 날짜를 정해 만나기도 하고 느닷없이 만나기도 하면서 새록새록 정이 들었다. 시내 음식점, 청소골, 구례 섬진강가에서 놀았다. 우리 모임에는 술과 음식, 노래와 춤 모두가 넉넉했다.

그건 A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는 비어치킨과 돼지 수육을 잘했다. 신이 나면 해금을 타기도 하고 즉석에서 사철가나 춘향전 한 대목을 구성지게 뽑기도 했다. 그러면 그의 아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 한 춤을 덩실덩실 추어 흥을 돋우었다. 우리들은 근심걱정을 모두 내려놓고 박장대소하며 시름을 잊곤 하였다. 무엇보다 안면 근육 전체를 동원하여 웃는 A의 파안대소는 일품이었다.

그러던 그가 작년 5월부터 연락이 뜸해졌다.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고 체중이 빠진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해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우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평소 건장한 체격인데다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 곧 회복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11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순천 제일 큰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암이라는 것이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가 온통 하얗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의사들은 회의 끝에 몇 개월의 여유밖에 없다고 통보했단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해와 달이 사라지고 세상은 칠흑이 되었다. 막 쉰 살을 넘긴 그에게 이보다 더 암담한 일은 없을 것이었다. 소식을 접한 우리는 말을 잃었다. 어떤 언어로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런데도 그는 서울로 가기 전, 우리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여전히 웃으며 상황을 설명했지만 우리는 어떤 위로의 말도 찾지 못했고 북받쳐 오르는 눈물도 보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속수무책 긴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우리는 애써 “아직 절망하기엔 이르니 서울 큰 병원의 진단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공허한 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 대형병원에 2주 가까이 입원하여 검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말과 웃음이 사라진 자리에 깊은 절망과 대상 없는 원망, 가슴 저 밑바닥에서 북받치는 슬픔만이 가득 찼다. 수술을 해야 하나, 어디서 요양을 할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무수한 상념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최악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자나깨나 그가 걱정되었지만 그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무력했고 죄책감이 들었다. 기도밖에 할 게 없다는 결론은 슬펐지만,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A는 1차 항암치료를 받고 귀가하였다. 집에서 요양을 하다가 서울로 검사를 받으러 갔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엑스레이 상에 검은 부분이 제법 보인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희망의 새싹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뛸 듯이 기뻤다.

“우와~~” 단체 카톡에 불이 났다.

2차 항암치료를 받고 내려온 그의 제안으로 12월 26일 우리는 송년회를 가졌다. 불안과 공포가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었지만 평소처럼 담소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그는 술은 마실 수 없지만 노래는 부를 수 있다면서 단가 한 대목을 뽑았다. 우리는 온몸으로 축하하며 치유를 기원했다. 며칠 후 그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 검사를 받았고, 절반 이상이 회복되었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전해 주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우리 상식에 암이란 쉽게 퍼져도, 두어 달 만에 줄어들 수 없는 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암인지, 이런 암도 있는 건지, 오진을 한 것인지, 왜 이리 빨리 치료가 되는지? 의문은 많지만 알 수는 없다. 아직 종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두 달 만에 천 길 낭떠러지에서 햇살 눈부신 초원으로 나서게 된 셈이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트가 짜릿한 것은 추락의 공포와 불안이 기계장치에 의해 결국 안전할 거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떨어지고 부서지는 롤러코스트가 훨씬 많지만 아주 드물게 땅에 안착하는 롤러코스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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