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호백 글 / 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그림책은 짧고 간결해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긴 호흡을 이해해야 하거나 오랜 시간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 이야기는 다음에 올 이야기가 궁금해서 정신없이 앞으로 읽어가게 된다. 지나온 이야기를 되돌아보며 천천히 보기 힘들다. 그러나 그림책은 놓친 그림을 보기 위해 앞 페이지로 되돌아가서 다시 보는 일이 쉽다. 반복해서 보고 되돌아보면서 생각을 깊게 하게 되는데 작가가 주는 메시지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보태는 좋은 책읽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그림책을 읽는 어른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호백 글, 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은 그림책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 꽤 오래 전에 나온 책이지만, 그림이 주는 매력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민화를 생각나게 하는 화려한 색깔과 그림. 병아리와 닭들의 모습과 표정, 놀이는 그림책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그림 속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림이 주는 매력에도 불구하고 참 아쉬움이 많은 책이다.

 
책을 펼치면 화면 가득히 닭과 병아리들이 사랑스런 눈으로 병아리가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 모습은 지금 막 태어난 병아리가 ‘튼튼해 보이는 수평아리’였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을 함께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영웅의 탄생이 아니다. 작은 병아리를 둘러싸고 탄생의 순간을 축복하기 위해 좁은 집안을 위 아래로 가득 채우고도 부족해 사다리에 올라서서까지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족의 범주를 넓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병아리들이 노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동네 이곳저곳 담벼락 아래, 울타리, 동네 공터, 앞마당, 힘자랑 대회를 하는 곳이며 환갑 잔치 마당까지 아이들끼리 혹은 어른 닭들 틈에서 병아리들은 줄곳 장난치며 어우러져 논다. 기차놀이, 달리기, 책가방 던져놓고 말타기하는 병아리의 모습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놀이를 통해 배우고 자라는 건강하고 씩씩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다. 커가면서 다치기도 하고 멋도 부리고 자신의 모습을 신기해하고 자랑스러워하며 늠름한 수탉으로 자라는 모습에는 장난기와 젊은 기상이 느껴지는 표정까지 살아 있다.

또, 힘자랑 대회를 동네잔치처럼 벌이는 민속놀이판인 팔씨름으로 표현하여 농경문화와 어울어진 놀이문화의 모습도 자연스레 보여준다. 이런 그림은 더불어 사는 따뜻함과 우리 정서를 듬뿍 느끼게 한다. 당당함과 절망감, 외로움과 기쁨의 감정도 그림으로 잘 살려 그리고 있다. 그러나 제목과 글의 주제에서 보이는 ‘제일 힘센’의 가치를 그림에도 담고 있어 아쉽다. 힘이 세다는 것은 누군가가 가진 장점이 될 수 있다. 힘센 사람, 빠른 사람, 꼼꼼한 사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는 사람, 요리를 잘하는 사람, 정리를 잘 하는 사람, 식물을 잘 가꾸는 사람 등등. 사람들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이런 특성이 사람들이 더불어 공동체를 이룰 때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 준다. 힘이 세면 힘이 필요한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힘이 세다는 것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제일” 힘이 세다는 것에 만족한다면 이는 언젠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일등은 더 넓은 세상을 만나면 바뀔 수밖에 없고 시간이 지나면 역시 바뀔 수밖에 없다. 일등이 아니라고 해서 힘이 세다는 장점이 없어지는것도 아니다. 힘센 장점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이다.

‘보기만큼이나 씩씩’하고 ‘달리기도, 높이뛰기도 이 병아리를 따를 병아리가 없었’던 ‘곧 동네에서 제일 힘센 병아리’가 된 수탉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된 이 후 힘이 세다는 것으로 동네 수탉의 부러움을 받고 암탉들이 졸졸 따라 다니지만 정작 수탉이 하는 일은 없다. 그저 힘셈을 뽐내는 것밖에. 그래서 더 힘센 수탉이 나타나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동네에서 제일 술을 잘 마시는 수탉이 되고 만다. 그저 술을 마시는 수탉이 아니라 술 마시는 것도 제일이 되어야 하는 일등 강박증을 드러내고 있다.

손주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힘센 아들을 보면서도 웃지 못하는 수탉이 환갑잔치에서 고개 숙여 절하는 자식들을 보며 웃고 있다. 시끌벅적한 잔치의 흥겨움이 살아있는 그림이다. 이 장면만으로는 처음 수탉이 깨어나는 장면처럼 가족 공동체의 따뜻함이 보이지만 수탉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살려 그린 구조가 글의 내용과 맞물려 불편함을 준다. 가족 속에 어우러져 즐거운 모습이기보다는 가족의 존경과 떠받들어줌에 만족한다면 잔치가 끝나고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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