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관사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4 - 조현자(82세), 박철수(87세) 부부

조곡동 철도관사마을에는 경로당 네 곳이 있다. 각 경로당마다 특색이 있지만 경로당의 분위기와 살림을 책임지는 회장의 역할이 무척이나 큰 듯하다. 철도관사마을 위쪽으로 올라가면 언뜻 보아 경로당 같지 않는 일반 가정집 현관 입구에 ‘관사경로당’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관사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다들 여든이 넘은 분들로 다른 경로당보다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조현자(82세) 관사경로당 회장과 39년 6개월을 철도에서 근무한 남편 박철수(87세)씨를 만났다.


여기서 54년부터 살았으니 60년을 쭉 산거지

1932년 전북 남원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조현자씨는 17세에 남편인 박철수씨와 선을 봤다고 한다.

“박철수씨 이모되시는 분이 중매를 했지. 선보고 몇 달 안돼 결혼했어. 부모가 이리 가라면 이리 가고 시킨대로 할 때잖아. 5년을 남원 시부모님 밑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우리 아저씨는 철도 다니면서 순천에서 하숙하고 살았어. 시부모랑 5년 있다가 딸 낳고 나왔으니까 여기 관사마을에서 60년을 살았지.”

조현자씨가 결혼한 해에 여순사건이 있었고, 19세에 6·25전쟁이 났다. 여순사건 때는 남원에 있었던 지라 별 기억이 없지만 전쟁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까맣게 탄다.

“6·25때 기관사도 한쪽(국군)이 밀리면 내려갔다가 사정이 좋아지면 오고 그랬잖아. 6·25때 우리 아저씨도 밀려가서 저 대구에 있다가 왔어. 석달간 소식을 몰랐어. 죽은 줄만 알았어. 지금같이 차도 안다니고 전화도 없고 그러니 죽은 줄 알았지.”


▲ 82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야무지게 관사경로당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조현자씨.
습격을 세 번이나 받았는데 용케 안 죽고 살아났지

조현자씨의 남편 박철수씨(87세)씨는 1945년 3월 철도에 입사하여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특히 여순사건이나 6·25전쟁 당시 기관사들은 날마다 생사를 넘나드는 불안 속에 일했다고 한다.

“공비들이 열차 습격을 해. 물자도 뺏고 할라고. 그러면 제일 목표가 기관사여. 처음에는 레일에다 자갈만 올려놨어. 그러면 기관차가 밀어불고 가거든. 긍께 덕석을 갖다 놔, 탈선하라고. 그것도 기관차가 또르르 말고 가브러. 그것도 안 되니까 지뢰를 파묻어. 그래가꼬 차가 폭발하면 레일로 떨어지고 그랬어.
그때는 서로 안 갈라고 그래. 누구 사정 봐주고 이런 거 없어. 순서대로 불러내는 거지. 그래도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고 그래. 나도 습격을 세 번이나 받았어. 그래도 용케 안 맞고 안 죽고 살아났지.
나하고 탈 때는 희생당한 사람 없는데, 다른 사람들하고 탈 때 많이 희생됐어. 국가 공로자들은 그 사람들이여. 6·25때 철도에서 순직했다고 그 사람들 가족한테 아무 혜택도 없고, 누가 언제 죽은지도 모르고 그런 실정이라. 6·25때 죽은 사람은 국가가 해줘야 하는디, 그때 죽은 사람은 아무 혜택도 없어.”


부자로는 못 살아도 밥은 먹고 살았지

조현자씨와 박철수씨는 자식들이 착하게 잘 살아주는 것이 행복이라며 지금은 만족하며 산다고 이야기한다.

“부자로는 못살아도 밥은 먹고는 살았지. 공무원들이라. 그래도 만족하고 살았어. 오남매 키우면서 용돈 쓰라고 단 만원도 준 적이 없어. 그저 학교 마칠거만. 즈그들이 열심히 해가지고 다 좋은 직장 다니고 결혼해서 잘 사니까 그것이 행복이지. 결혼해서 기관사들 독신자 합숙소 방 한 칸에서 일곱이 살았어. 얘들 다섯하고. 우리 큰 딸 고등학교 가면서 여기 관사로 이사 와서 한참 빚 갚으며 살았지. 어렵게 살았지. 그래도 지금은 만족허니 살아.”

▲ 조현자(82세)씨와 박철수(87세)씨 부부

저녁밥까지 주는 경로당은 여기밖에 없을거여

관사경로당이 생긴지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조현자씨는 초대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하고 있다. 다들 조현자씨보다 연세가 많아 맡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 경로당 회장이 하는 일은 동에서 나오는 운영비를 받아 전기요금, 가스요금, 전화요금 등 공과금도 내고 경로당 살림살이도 책임지는 일이라고 한다.

“오전부터 모여서 놀고, 화투도 치고 밥해 먹고 그래. 회장일은 관리허는 거지. 먹고 살고 하는 것도 그렇고, 은행가서 돈도 내고 나면 서류도 첨부해서 보고도 해야 돼. 몇 년 전부터 우리 아저씨가 총무를 해줬어. 서류 같은 거는 우리 아저씨가 다 해주지.”

연료대도 나오고 운영비도 나와서 쓰고 나면 영수증 첨부해서 보고하는 일은 남편인 박철수씨가 도맡아 해주고 있어 큰 일거리는 던 셈이다.

경로당에 지급되는 돈은 한달에 7만원으로 석달치 21만원이 한꺼번에 나온다고 한다.

“그 돈으로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공공요금 다 내고 나면 돈이 얼마 안 남지. 남으면 커피같은 거 사고. 일년에 쌀 20키로 네 푸대 나오거든. 올해는 지금까지 두 푸대 나왔네. 그래서 우리끼리 쌀을 팔아서 밥을 해먹어. 점심, 저녁까지 다 해줘. 저녁까지 먹고 가. 며느리들이 밥 채래줄라면 성가시지. 긍께 여기서 먹고 가면 편하지.”

관사경로당에는 평상시 여덟에서 아홉 분의 어르신들이 계신다. 젊은 층이 많은 중앙경로당같이 복지관에 가신 분들도 없다고 한다. 

“복지관 같은 데도 나이가 많아서 갈 수가 없어. 10년 동안 어르신들이 열 분이나 돌아가셨어. 회원들이 많이 줄였지. 나이가 많으니까 할머니들이 많이 돌아가셨지. 할머니들이 자기들 죽을 때까지 회장하라고 그래. 나이가 나보다 다 많아. 내가 젤 젊어. 밥도 해묵고 수제비, 전도 부쳐 묵고 재밌어. 저녁까지 먹는 데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여. 쌀만 있으면 반찬은 여기저기서 갖다 줘.”

82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야무지게 관사경로당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조현자씨의 시원한 웃음이 활기차기만 하다.


남편이 오래 살아주는 것이 복이여

조현자씨는 50세에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서 10년 동안 다닌 보험회사를 그만 둔 60세부터는 꾸준히 나간다고 한다. 30년 동안 새벽기도를 다니시는 조현자-박철수 부부의 모습을 보고 승산교회에서는 신도들의 모델이라고 칭찬을 한단다.

조현자씨는 시원시원하고 화끈한 성격이고 박철수씨는 말이 거의 없고 과묵한 성격이다. 장수하는 두 부부의 조화로움이 궁금했다.

“내가 우물쭈물한 성격이 아니여. 한다면 하고. 이 양반이랑 성격이 안 맞지. 근데 한 양반이 숙여주니까 사는거여. 남편이 오래 살아주니까 내가 빛을 본다고 생각해. 나이 먹을수록 남편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천지 차이여. 남편이 오래 살아주는 것이 복많은 사람이여.”

철도관사마을의 역사와 마을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는 말에 젊은 사람들이 좋은 일 한다며 격려하신다.

“잘한 거여. 아무것도 없으면 모르잖아. 기록이 있어야지. 좋은 일 하는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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