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청년 정회민

바이올린 가방을 들고 가는 한 청년을 만났다. 미소가 따뜻한 이 청년은 스물다섯 적지 않은 나이에 음악을 전공 하겠다며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었다. 한참 대화를 하다가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저 두꺼운 안경을 썼구나 했는데 선천적으로 시력에 문제가 있어서 밝은 빛과 형태만 보인다고 했다. 낮에는 햇빛이 있어서 익숙한 길은 보행이 가능하지만 밤에는 외출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니 잠시 나의 게으름에 고개가 숙여졌다.

▲ 바이올린 연주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정회민 씨.
   올해 스물다섯 원숭이띠 랍니다. 2월 입시에서 좋은 소식을 기대해 봅니다.

회민씨는 집에서 가까운 순천연향중학교와 순천금당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시각장애인을 위한 목포은광학교를 다녔다. 은광학교를 졸업하는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안마사가 된다고 하는데 그는 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아직은 안마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단다. 그곳에서 체육선생님의 눈에 띄어 유도를 시작 했는데 타고난 체력과 운동 신경이 좋아서 쉽게 국가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장애인 아시안 게임과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도 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단체전에서 은메달까지 수상했는데 올림픽 상비군 출전권을 얻지 못하자 고민 끝에 운동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계속하지 왜 그만  두었냐는 질문에 그는 선수촌 생활이 많이 힘들었다고 대답하며 머쓱하게 웃는다. 헝가리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하기 전에 3개월의 합숙 기간동안 선수촌 숙소를 배정 받지 못해 외부 숙박업소에서 생활하며 스스로 세탁과 식사를 해결해야만  했다. 시력이 나쁜 그에게 이런 생활은 일반선수들보다 힘들었을 것이라 짐작만 해보았다. 새벽 5시에 기상해서 밤 9시 30분까지 식사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운동만 했던 2년 동안 힘들었지만 끈기라는 덕목을 가지게 되어 후회는 없다고 한다.

그가 불편한 시력으로 운동을 했다는 경험도 놀랍지만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경이롭다. 일반인들도 오선지를 보면 손사래를 치며 도전하지 않는 분야 인데 악보는 어떻게 읽고 연습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는 고교시절 교회를 다니면서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었다. 악보는 집에서 전자 확대경으로 한마디씩 본 다음 소리를 듣고 외워야 한다. 그 과정이 힘들어서 한 페이지를 보고나면 심한 두통이 밀려와 선수촌에서 몇 시간동안 운동하는 것 보다 힘들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연주자들은 대개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서 암보연주를 한다. 암보 연주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의 노력을 하는지 연주자들은 간혹 얘기한다. 그런데 회민씨는 연습시작부터 보이지 않는 악보를 청각에 의존해 머리 속에 집어넣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한지는 본인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힘든 길을 선택했는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인생을 걸만큼 깊이가 있는 것 인지 질문하자 그는 피식 웃었다. “아니오. 저는 위대한 예술가의 감성 같은 거창한 목표는 없어요. 확대경의 도움을 받으면 느리게라도 악보를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시력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남은 시력이 다 사라지기전에 지금 바이올린을 더 많이 배워야 해요. 그래야 나중엔 청각과 촉각만으로 악기를 연주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이 아니면 다음기회는 없어요.”

나는 그에게 어떤 극적인 대답을 기대 했을까? 
음악학교를 졸업한 후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에 입단을 하면 연주를 계속 할 수 있고 고정급여가 생긴다. 그의 꿈은 자신과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당당한 직업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2016년을 살고 있고 청년실업을 고민하는 지극히 평범한 청년이었다. 진솔한 그의 삶에 예술이라는 과장된 옷을 입혀 보려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그는 오는 2월에 한빛 맹아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다. 대학생이 되면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싶다고 했다. 예쁜 여자 친구 앞에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연주하겠다는 또 하나의 꿈도 이루어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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