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장난』/ 이경화 글 / 대교출판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초등학교 고학년 서술형 시험문제다.
<다음에서 학생들이 한 말을 자신이 들었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쓰시오>
“닥쳐 꺼져 OOO야~ / 야 OO OO”
아이는 ‘뒷통수를 후려갈기고 싶다’고 적었다. 시험지를 채점한 선생님은 ‘뒷통수’와 ‘후려갈기다’에 빨간색 색연필로 밑줄을 긋고, ‘Oh No~'라고 코멘트를 달았다. 틀린 문제에 새로 적어 넣은 답은 ‘기분이 나쁘다, 속상하다’였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가 달라질 수 있는건 당연한 것일텐데, 솔직한 감정조차 가르치고 순화하려는 것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표현되는 언어가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이다. 거친 언어를 쓰기 때문에 아이들이 폭력적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지독한 장난』은 가해자-피해자-관찰자, 각각의 시선으로 학교폭력의 모습을 그려 낸 청소년 소설이다. 초등학교 때, 학교폭력을 당한 뒤 힘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여기는 강민. 중학교 2학년이 된 강민은 ‘아빠와 엄마의 강민’이다. 강민은 부모가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부모는 폭력으로 협박하고 강요하며 강민의 자존감을 짓밟는다. 강민은 학교나 학원에서 힘이 있어야 관심 받는다는 것을 알고 친구들 앞에서 과시하기 위해 학원에서 선생님 말에 딴지 걸고 거들먹거린다. 학원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아빠는 강민을 걱정하거나 말을 들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체면이 깎인 것에 분개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강민이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건 사내답게 키워야 한다는 아빠의 교육법이다. 폭력을 무서워하면 폭력에 굴복하고 만다는 것이다. 강민은 여전히 폭력이 두렵다. 맞는다는 게 어떤 건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한 대 맞을 때마다 과거에 맞았던 고통까지 한꺼번에 달려든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설마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미워서 때리시겠니 하면서 아빠의 폭력을 두둔하고 나선다. 엄마 아빠는 자신들의 체면과 마음만 중요하고 강민은 감정도 없는 것처럼 무시한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강민은 폭력이 무섭고 고통인데 강민의 부모는 폭력을 당했을 때 강민의 마음이 어떨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아이가 자신들의 얼굴에 먹칠하면 안 되기 때문에 강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시키는대로 하라고 강요한다. 강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 고통, 두려움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다. 이런 감정을 누르고 있는 것이 극에 달하니 폭력으로 표출될 수 밖에 없다. 강민은 폭력이 두렵기도 하지만 부모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달리 생각하지 못 한다. 학교생활도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한다. 강민의 패거리에 들어있는 아이들은 대체로 강민에게 기는 아이들이다. 강민은 아빠의 방식으로 학교에서 반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자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자 아빠에게 자기의 폭력행위가 들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패거리를 만들어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게 한다. 강민이 지목한 아이를 괴롭히는 일을 패거리 들이 나서서 하는 거다. 강민은 점점 더 힘센 괴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부모에 의해서 자신의 삶이 좌지우지 되는 강민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 욕구를 들여다보고 고민을 나눌 통로가 없다. 삶의 의미를 생각하거나 자존감을 가질 기회도 없다. 그나마 또래 친구들과 관계가 좋다면 그것으로도 돌파구가 될 수 있는데 친구를 사귀는 방식도 부모로부터 익숙해진 폭력적인 것밖에 모르니 더 힘들다. 강민은 자신을 믿고 신뢰해주는 어른도 친구도 없다. 불신과 짜증, 우울함만이 있는 위태로운 삶이다. 부모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아이를 알아가고 서로 의논하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아이를 자신의 삶속에 넣어두고 꼼짝도 못 하게 하니 아이는 괴물이 되어 가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의 기대와 요구에 맞춰 살기만을 강요한다면 아이는 자신을 알아갈 기회도 갖지 못 하게 되고, 또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 할 때 자신이 얼마나 쓸모없고 비참하게 느껴질 것인가? 그런 아이가 무슨 힘으로 신명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어른도 아이도 누구나 각자 유일한 존재이다. 사회에서 혹은 가정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결국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고 누구도 똑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자신의 고유한 삶을 만들어가느라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에 저항하고 있는 아이들을 교육이라는 잣대로 함부로 규정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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