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순천,순천인


 
1987년 10월 6일 (화) 약간 흐림
삶을 모두 인정하면서 허무를 또한 인정한다.
여태까지의 나는 열정을 가지고 살았던가?
지금과 똑 같은 생각으로만 살면서 행동만 달리 하질 않았던가?
무섭다.
미래에는 얼마나 허위와 허무와 거짓과 위선에 접해야하며 헤매야하는 것일까?
송희도 허위였을까?
그 쾌락과 안락함의 시간들도 공간에 묻혀, 허공 속으로.
‘허공속에 묻어야만될 슬픈 옛이야기’ 조용필의 가사 한 줄처럼.
이 비극의 노래가 언제쯤 끝이 날까?
악마의 향연, 축제.
그러나 악마라는 것은 없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악마일 것이다.
엄마, 형, 형수, 조카, 누나 들의 가족이 있으면서도 이 속에서 심한 괴리감을 느끼며 오히려 고독함을 느끼는 것,
‘나’란 存在는 이 세상 끝날까지도 혼자이기 때문일까?
모든 정신, 인격들의 아우성, 생존의 법칙, 이런 이차원적인 사고 속에서 언제쯤 헤어날게 될까? 어쩌다 이렇게 빠져버렸을까?
“귀소본능”고향을 찾는 마음에는 어느 허위의식을 적용시키지 말일이다.
튼튼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면 결국은 고향으로 발길을 향하는 나약한 모습들이기에, 안정된 生活을 하는자들, 초라함 속에서 겨우 질긴 목숨 연명하는 자들. 이들에게도 그 어느 비난과 힐책을 잠시 멈추고, 송편과 약밥을 나눌 일이다. 인간은 증오에는 강해지고, 동정이나 사랑에는 쉽게 무너져버린다.
나폴레옹의 침실에 클라라가 있듯이.
그래서 동정은 악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하나의 우화, 몸에 무리를 주는 격정. -중략

 
지난주 광장신문에 실린 젊을 때의 연애편지 한 편, 아주 재밌는 글을 읽었다.
나 역시 치열했던 그 시절을 기억한다. 안정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가난했던 시절 돈을 벌겠다고 울산조선소로, 인도 봄베이 해양공사로, 서울 을지로 인쇄골목으로 돌아다니다 전봇대에 현수막 달러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3미터 아래로 떨어지면서 왼쪽발이 분쇄골절이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더 이상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순천의 큰 형 집으로 요양차 내려왔다가 고교시절의 친구들도 만나고 술도 한 잔씩 하면서 고민했던 시절의 일기장 한 페이지를 펼쳐본다.
비록 연애편지는 아니지만, 스물다섯살의 고민과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이 있어, 추억을 나누고자 한다. 심히 오그라드는 손발은 독자의 몫이다.
 
장천동 이충현 

In순천∙순천인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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