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순천,순천인


 

요즘 많이 인기 있다는 드라마 제목이다.
잠 못 이루던 어느 밤에 1~6편 까지 몰아보기를 했다.
촌스러운 디스코바지, 나이키, 스프레이 잔뜩 뿌려 세운 닭벼슬 앞머리까지 마치 내 앨범에서 꺼내놓은 사진 같았다.
바보처럼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이 나는 것은 그때의 기억과 지금 나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공감하기 때문이겠지.
문득 옷장 아래 편지 상자를 열어보고 싶었다. 나의 1988에는 무슨 이야기로 채워져 있을까?
먼지 냄새 나는 편지들 , 못쓰게 된 코닥필름, 그리고 무슨 배짱인지 남들이 다 볼 수 있게 보낸 엽서들.
그 중에 가장 오글거리는 한 장을 과감하게 광장신문 독자들에게 공개하리라.
아마 신문이 발송된 후에  나는 부끄러움에 순천을  떠날지도 모르겠다.
이 엽서는 1988년 가끔 길에서 마주치던 남학생이 보낸 것이다. 이후로도 몇 장의 엽서를 더 받긴 했으나
가지런한 필체와 심하게 다른 외모 때문에 ... ㅎㅎ 뭐 그렇게 남이 되신 분이다.
 
 
안녕!
나의 시야에 너의 가지런한 하얀 치야가 너의 입술 사이로 살포시 내보인다.
너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를 보고 싶다.
정말  오래간만이다 그치?
소낙비가 경쾌한 리듬으로 지붕을 때리는 소리에 너를  만나고 싶어 이렇게 펜을 든다.
나의 눈물은 이제 가물어 무섭게 내리쬐는 태양빛에 불태워 모두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는데...
이렇게 비가 되어 적시다니 ... 너가 잠든  지붕위에도 비가 내리겠지?
사랑하는 이여 !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무척  궁금하군요.
공부가 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공부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아는지? 기회를  놓치면  안돼. 알았지?
사랑하는이여! 너를 위해  기도 할께 . 거친 세파속에서도  꿋꿋하게 너의 뜻을 관철  할 수 있도록---
~안녕~ 
1988. 6. 21 珍 

우하하^^ 하하^^ 타자치는 손가락마저 오글거리게 한다. 하지만 좋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이야기들이 몸서리치게 유치하지만 잠시 나를 스무살로 돌려 보내주었다.
스무살이란 얼마나 벅찬 단어인가?
우리의 스무살, 1988년에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1987년 6월 항쟁만큼은 아니지만 1988년 역시 대학가는 학생운동으로 뜨거웠던 그 시절,
우리는 대부분 최루탄 지독한 어느 거리를 달렸을 것이고, 밤이면 괜한 객기를 부리느라 못이기는 술을 마셨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어설픈 꿈으로, 또 다른 이들은 실연의 아픔으로 울고 웃고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투쟁의 성 보라였고 사랑의 성덕선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88학번, 69년생은 486세대라는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딱히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최루가스에서 최루액으로 변한 통제가 남아있고, 우리는 아직 찾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사랑을 꿈꾼다. 

연향동 양현정

 In순천∙순천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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