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배선의 걸으면서 배우는 조계산(3)



조계산은 수백 년 동안 민초들이 양식을 구하며 기대어 살아온 어머니 산이다. 능선과 골짜기마다 무수한 생명의 열매와 뿌리가 널려 있다. 그래서 사계절, 숲속을 뒤지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조계산을 거닐다 보면 사진과 같은 시설(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대부분 무심코 지나치지만 이곳은 우리 조상들이 고급연료를 생산하던 산업 현장인 숯가마(터)이다. 조계산의 선암사와 송광사에서 운영했던 숯가마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고, 조계산 역사에서도 한 획을 긋는 사업이었다. 선암사에서 운영하던 숯가마는 산 전체를 31개 구역으로 나누어 매년 한 골짜기씩 돌아가면서 숯을 구웠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송광사도 마찬가지였다. 

▲ 조계산의 숯가마터
▲ 조계산의 숯가마터 앞면

일제강점 이후에는 탄감(炭監)을 두어 직접 운영하는 방식과 민간인에게 맡기는 부분 하청 방식을 병행하는 등 매우 계획적으로 운영했다. 숯가마는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했다. 골짜기마다 남아 있는 숯가마 터는 우리의 산업현장인 동시에 조계산 역사의 흔적이다.  

많은 숯가마들이 허물어져 용도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구덩이처럼 보이지만 사진처럼 보존 상태가 좋은 것도 있다. 내벽은 돌담으로 둘러쌓고, 외벽은 흙으로 쌓아 올렸거나 주위의 지형을 이용하여 반은 땅을 파고 반은 위로 쌓아 올려 만든 것도 있다. 규모는 제각각이지만 작은 것은 지름이 2.5m이고, 큰 것은 4m가 넘는다. 

사진에서 보이는 숯가마 터는 아래 부분만 남아있는 반쪽 모습이다. 원래 전체의 모양은 위로는 돔 형태의 흙으로 만든 지붕이 있고, 앞으로는 60cm 정도의 불문이 있다. 뒤에는 지면에서 뽑아낸 굴뚝이 있었다. 그래서 숯가마의 전체 높이는 6자(180cm) 전후 크기이다.

조계산에는 이런 숯가마 터가 100여 곳이 넘는다. 물론 이런 숯가마는 조계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계산에서 가까운 모후산이나 백운산에도 있고, 형태는 조금 달라도 참나무가 많은 산에는 전국 어느 곳에나 있었다. 그러나 특별히 조계산에 숯가마 터가 많은 것은 사찰림으로 조성한 참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계산 주변 마을 사람들은 숯가마를 ‘숯굿막’ 이라고 불렀다. ‘숯굿(숯구덩이)’과 ‘숯막(숯 굽는 사람들의 움막)’이 합쳐진 말이다.

참숯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참나무를 베어 통나무 부분을 6자(1.8m) 길이로 자른다. 작은 가마는 5자 크기로 자르기도 했다. 
2. 가마 안이 가득 차도록 통나무를 줄지어 세워 넣고 불을 붙인다. 돔처럼 생긴 흙 지붕이 갈라져 연기가 세는 곳은 흙을 이겨 발라서 메운다.
3. 나무가 타는 것을 확인하고, 거의 다 타서 푸른 연기가 나면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앞문을 폐쇄한다.
4. 앞문을 폐쇄하고 마지막 불까지 다 탄 후 푸른 연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굴뚝을 폐쇄하여 공기를 완전히 차단하여 숯불이 모두 꺼지고 식은 다음 가마를 열고 숯을 꺼낸다.(약 7일)

참숯은 백탄(白炭)과 흑탄(黑炭)으로 구분한다. 백탄과 흑탄은 이름처럼 색깔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이다. 그러나 백탄이 이름처럼 하얀 것은 아니고, 약간 회색빛을 띈다. 그러므로 숯을 처음 보는 사람이 둘을 비교하여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 백탄과 흑탄은 제조 과정에 불을 끄는 방법으로 구분한다.

참나무를 숯가마에 굽는(태우는) 과정은 같지만 불붙은 숯을 아궁이에서 조금씩 꺼내 그 자리에서 모래나 흙을 끼얹어 불을 꺼 만드는 것이 백탄이다. 공기를 접촉하면서 약간의 회색빛을 띠게 되는 것이다. 흑탄은 나무가 다 탄 가마를 통째로 밀폐하여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숯을 꺼낸다.

백탄은 가마 주변에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빠른 시간 안에 불을 끄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단점이다. 주로 마을 안이나 마을 가까운 곳에 가마가 있었고, 흑탄에 비해 화력이 좋아 궁궐에서는 백탄을 사용하였다.

반면 흑탄은 깊은 산속 곳곳에 가마를 만들어 현장에서 나무를 베어 막을 치고 숙식을 하면서 숯을 구워 운반하였다. 절이나 양반 대갓집 등 대부분의 사람이 사용하였다. 조계산에서 만든 참숯은 모두 흑탄이다.
불을 지피고 나서 기다리는 시간에는 잘 자란 산죽(조리대)을 베어다 두세 자 길이로 다시 잘라 한 아름 넓이로 발장처럼 엮어 이으면 산죽 발통이 된다. 아래쪽(바닥)을 원통 형태로 얽어 메어 댓잎 등을 깔고 숯을 차곡차곡 세워 담은 후 칡넝쿨이나 산죽 쪼갠 가지로 위쪽까지 얽어매면 포장된 규격품 숯 뭉치가 완성된다. 

조계산에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양의 참숯이 생산되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조계산에는 숯을 굽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불길이 꺼진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의 뇌리에서 멀어진 것과 같이 숯가마의 흔적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조계산에서 숯을 구웠던 사람은 70대를 넘어 생존해 있는 사람이 드물다. 그들이 모두 떠나기 전에 사라져가는 민초들의 삶의 흔적이 되살아난다면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볼거리가, 어린이들에게는 좋은 학습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숯가마의 일부라도 살려 보면 어떨까? 
 
 

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올 6월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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