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개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졌다. 깊고 캄캄한 구덩이 속에서  ‘로쿠베’가 할 수 있는 건 ‘멍멍’하고 짖을 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로쿠베가 구덩이에 빠진 것을 발견한 아이들은 잠시도 구덩이 곁을 떠나지 못하고 로쿠베가 기운을 잃을까봐 걱정한다. 힘내라고 소리치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다. 한 친구의 힘내라고 하는 소리에 로쿠베가 멍멍하고 반응하자 모두들 입을 모아 다시 한번 소리친다. “로쿠베, 힘내!” “멍멍!” 로쿠베가 반응하는 것이 반갑고 다행이다. 로쿠베와 아이들의 마음이 일치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로쿠베는 점점 힘을 잃고 바닥에 웅크리게 된다. 위험에 빠진 로쿠베가 힘을 잃어갈수록 아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커지고 힘내라고 소리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 엄마들을 데려오고, 힘을 낼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로쿠베가 즐거워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비눗방울을 불어주고,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하고, 마지막에 가장 힘나고 기운날 것 같은 로쿠베의 여자친구를 내려 보내서 결국 로쿠베를 구출한다. 휴~ 다행! 책장을 덮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상냥함이 듬뿍 담긴 그림책이다.


 

구덩이에 빠진 로쿠베를 발견한 아이들의 첫 반응은 ‘바보’다. ‘내가 말해줬잖아, 조심하라고 했잖아, 나만 따라 다녀’ 이런식의 원망이나 비난하고는 다르다. 아이들의 걱정스런 표정을 보니 ‘조심하지, 잘 보고 다니지, 어떻게 구덩이에 빠졌니?’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진다. 깊고 캄캄한 구덩이 속 상황에 대해 아이들 역시 위험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안타까움이다. 동시에 아이들 스스로 위험이라고 판단한 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한 로쿠베가 걱정되고 불안하다.

그렇지만 깊은 구덩이 속에서 로쿠베를 구하는 일은 초등학교 일학년 아이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당황스럽고 안타깝고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오래 생각해야 하는 순간들이다. 피하고 싶지만 로쿠베가 걱정스러워 그럴 수가 없다. 아이들의 힘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힘없는 아이들이 마침내 로쿠베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로쿠베와 함께 힘든 순간을 견디며 오래 고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포기하고 집에 돌아왔다가 나중에 누군가 여자 친구를 내려보내면 될거라고 방법을 알려주었더라면, 그때는 이미 로쿠베를 구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수많은 선택을 해보고 고민하는 순간들이 이어졌기 때문에 구덩이 속에서 로쿠베도 완전히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로쿠베가 구덩이 속에서 버티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어른들은 구덩이 안을 들여다보면서 ‘안 되겠네. 남자가 있어야겠다’ ‘개라서 다행이지 사람이었으면 큰 일 날 뻔했네’하고 지나가버린다. 비겁한 어른들이나 골프채를 든 아저씨처럼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먼저 정하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할 기회도 성장도 없다. 아이들이 온 마음을 쓰고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로쿠베가 구덩이에서 얼마나 두려울지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이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 결과만 생각하면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은 쉽게 외면하게 되고 자신이 어떻게 힘을 줄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지혜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은 어른들에게서 아이들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구덩이 옆에 있으면 위험하다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안전을 이유로 로쿠베를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로쿠베가 구덩이에 있는 동안 함께 했고, 로쿠베가 나왔을 때 세상에 빛이 다시 들어온 것 같은 기쁨과 행복을 함께 맛볼 수 있었다.

오늘 행복을 맛 본 사람은 다음 다가올 순간도 설레임으로 맞이할 것이고 힘든 일이나 고민도 기꺼이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함부로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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