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깊게 보면 자살도 예외는 아니지만, 타살은 사회가 그 직접적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공권력에 의한 살인은 그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면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라서 앞으로도 너무 쉽게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구조이기에 공권력이 살인을 자행할 수 있는가? 다른 해석도 있겠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독선이 통하는 구조가 문제다. 독재의 효율성을 선망하는 정치, 독점의 생산력을 부러워하는 경제, 일등의 월등함만을 칭송하는 사회, 단일민족의 우월성을 가슴 깊이 간직한 문화 등도 독선적 구조의 다른 면이 아닐까?

 독선적 구조의 뿌리
독선이 통하는 최고의 집단은 군대와 종교다.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보다는 목적 달성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군사문화는 독선을 고착시켰다. '까라면 까라'는 군대의 일방통행식 복종의 문화는 느림이나 여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신앙의 전파과정에서 다른 나라에서보다 유독 강조된 신앙의 배타성도 한 축을 담당했다. 다른 믿음에 대한 존중이나 인간 모두가 같은 피조물이라는 겸손은 아직도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지도부는 군사 문화를 체득한 세대이며, 종교의 힘을 등에 업고 서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생명의 본질은 대립이다
혼자만 옳다는 것은 생명 자체를 부정하는 죽음의 논리다. 깊이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거의 모든 생명체는 좌우 대칭 구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어디 새만 좌우를 가지고 사는가? 몸을 보라. 우리의 몸 가운데 척추가 있다. 척추를 중심선으로 대칭이다. 이것이 척추동물의 기본 구조다. 무척추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곤충이나 거미, 문어 등도 중앙선을 따라 대칭이다. 이처럼 동물은 기본적인 얼개가 대칭이다. 대부분 식물의 꽃이나 열매도 대칭을 이룬다.

생명은 본원적 구조가 대칭이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DNA도 쌍을 이룬다. 자신과 정반대의 존재는 바로 자신의 존립 근거다. 이러한 대칭적 구조의 생명현상은 생동적 평형을 이룬다. 세포가 죽으면 또 다른 세포가 살아나 그 자리를 메꾸듯, 뇌세포의 혈행이 막히면 다른 혈관을 통해 혈액이 흘러 뇌세포를 살리듯 생명은 생동한다. 모든 생명은 넘치면 흐르고 모자라면 채우며, 기울면 중심축을 이동시킨다. 이렇게 역동적인 평형을 이룰 수 있는 기원은 생명의 대칭성이다.

그러므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어떠한 행위도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세월호 유가족의 면회 신청을 묵살하는 것도 모자라서, 단 한 권의 역사 교과서로 학생들의 생각을 독점하겠다는 어거지는 독재를 넘어 생명의 법칙에 어긋나는 죽음의 수렁일 뿐이다. 동녘에서 새해가 솟아오르듯 생명은 수렁에서 광장으로 기어이 올라오고 만다.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