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배선의 걸으면서 배우는 조계산(2)

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올 6월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 조계산의 산세도


골짜기 전체가 생명의 땅

조계산은 산세가 순후하고 토질이 두터운 육산이다. 그러므로 숲이 울창하고 계곡마다 수량이 풍부하여 동식물이 잘 자라는 생명의 산이다.

조계산의 산세는 호남정맥을 따라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기 위해 큰 터를 형성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북쪽은 호남정맥 조계산 동편구간이 시작되는 접치에서 장박골 몬당에 닿아 말발굽능선을 따라가다 습지의 뒤편에서 우회하여 북으로 뻗어내려 시루봉에서 송광사 백호 줄기를 이별하고 오두재를 지나 등계봉에 도착하여 파인힐스 골프장을 내려다보며 주암뜰을 향하여 부드러운 줄기를 내려 보낸다. 장밭골(帳幕洞)은 남쪽을 향하여 장군봉과 효령봉(연산봉)이 좌우로 봉우리와 줄기를 말발굽 형태로 이어 두르고 장군봉의 등 뒤에 휘장을 두른 원형막사처럼 온화하고 부드럽다. 장박골 몬당(帳幕嶝)을 중심으로 약 6km 장안천 긴 계곡의 원류가 시작되는 Y자형 두 골짜기를 장박골이라 하며 왼쪽의 분지는 습지로 형성되어 골짜기 전체가 생명의 땅이었기에 천년의 세월동안 조계산 주변 백성들의 풍성한 삶의 터전이 되었다.
 

부드러운 흙길을 밟고 가는 육산

장박골은 조계산의 남쪽을 향한 커다란 계곡의 마지막 한 골짜기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골짜기를 아우르고 있다. 산나물과 약초 등으로 민초들의 삶을 지켜주던 깊고 깊던 골짜기가 이제는 사람들의 친근한 뒷동산이 되어 조계산을 찾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입구에 있는 보리밥집을 찾아가는 통행로가 되었다. 
산은 지질에 따라 암산과 육산으로 나눈다. 암산은 말 그대로 주요 봉우리와 능선이 암석과 바위로 이루어져 남성적(아버지) 위용을 자랑하는 것이 특징이다. 금강산, 관악산 등이 우리나라의 주요 암산이고, 전남의 대표적인 암산은 영암 월출산, 고흥 팔영산, 강진 주작산과 덕룡산을 들 수 있다. 조계산은 정상 남쪽 아래 솟아 있는 ‘배바위’를 제외하고는 바위다운 바위를 찾아 볼 수 없다. 대부분 부드러운 흙길을 밟고 가는 전형적인 육산에 해당된다. 선암사와 송광사를 왕래하는 등산로가 거칠어진 것은 수많은 사람의 발길에 살집이 홍수 때마다 쓸려버린 탓이다. 

조계산은 순천시의 서편에 자리하고 있는 884m 높이의 산으로 비교적 부드러운 산세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줄기들이 형성하고 있는 맥의 형태는 우리나라의 어느 산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은 최상의 터를 만들어 내는 풍수지세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미 천년 전에 조계산의 성세를 꿰뚫어 보고,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당시 국교 최대의 거찰을 세워 백성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우리나라에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이 헤아릴 수없이 많지만 조계산처럼 양대 본산을 품은 곳은 없다. 전남의 대표적인 산인 무등산(1119m)과 백운산(1217m)만 보아도 겨우 작은 말사나 암자가 몇 곳 있을 뿐이다.
 

장군대좌형과 금계포란의 산세

선암사와 송광사가 자리한 곳을 산세를 보면 먼저 동방을 향하고 있는 선암사 터는 장군대좌형(將軍臺座形)이라 하여 중앙에 머리를 세운 장군봉이 장군의(대좌)머리에 해당하며 앞가슴에 잔주름이 없이 우람차게 뻗어 내린 모습에서 그 의미를 실감할 수 있다. 좌우를 형성하고 있는 백호와 청룡의 줄기가 정면을 향해 대칭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국토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산세이다.

송광사 측의 산세는 선암사와 같은 정면 대칭형이 아니라 마주보는 줄기가 굽이돌며 새의 형상을 한 금계포란(金鷄抱卵)의 터이다. 즉 황금 닭이 알을 품었으니 송광사가 알에 해당한다. (금계를 봉황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골짜기 전체를 아우르는 주봉은 장군봉과 3km거리를 두고 서쪽을 향해 등지고선 효령봉(연산봉)이다. 그러나 선암사와는 달리 주봉이 아닌 백호줄기의 시루봉을 배후로 하고 있다. 백호봉을 등지고 넉넉하게 펼쳐놓은 터에 앉아 웅장한 청룡봉을 마주하고 있는 형상이다. 금계의 머리인 효령(연산)봉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 내리는 산세이다. 
 

▲ 호남정맥 조계산 남쪽 줄기와 선암사 백호분기


산과 산을 잇고 있는 줄기라 하여 연산


조계산은 선암사의 장군대좌형과 송광사의 금계포란의 산세를 이어 하나의 산으로 묶어놓은 아주 특이한 형태의 줄기이다. 산의 맥을 중시하던 우리의 선조들이 산과 산을 잇고 있는 줄기라 하여 연산(줄기)이라 불렀는데, 현재 장군봉과 연산(효령)봉을 연결하고 있는 능선이다. 연산의 어원을 들여다보면 현재의 장군봉과 연산(효령)봉이 고려시대까지 청량산과 송광산이라는 각기 다른 산으로 불렸다. 즉 선암사의 주산이 청량산이었고, 송광사의 주산이 송광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산(청량산)과 산(송광산) 사이를 봉우리들이 줄지어 맥으로 연결하고 있어 줄기의 이름이 연산으로 된 것이다.

등산객들에게 조계산 종주코스로 사랑받고 있는 연산줄기는 두 봉우리 사이만 열어 놓은 원형을 이루고 있어 골짜기의 형상이 장군의 막사와 같다하여 장막동이라 하였으며, 근래에는 줄기의 모습에서 말발굽을 연상하여 말발굽 능선이라 부르고 있다.

현재는 조계산이라고 불리지만 이전에 두 개의 각기 다른 산으로 불렸던 것은 연산의 줄기를 감안할 때 지형의 원칙에는 맞지 않다. 산의 아래 단위인 봉과 달리 인접하여 있는 봉우리를 산과 산으로 구분 할 때는 거기에 합당한 원칙과 조건이 따르기 때문이다. 경계로 나누는 기준은 맥을 분리하는 것과 같은 강과 하천이다. 이것은 자연조건에 의해 구분하는 기본이고, 다음은 전후 골짜기로 연결되는 고개(령․현․치) 길에 의해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산세의 조건과 합당한 결과

이렇게 볼 때 조계산은 연산의 줄기가 증명하듯 두 봉우리가 산으로 독립될 만한 지형적인 조건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양대 사찰에서 각기 상징적인 주봉을 산으로 높여 불렀던 것이 아니었을까? 뒷날 하나의 조계산으로 바뀐 것은 산세의 조건과 합당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조계산은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도 비슷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풍수 지리적 조건을 갖춘 영산이라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