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보내온 글

 

나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


▲ 허린
나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면서 베이글 가게에서 일을 한다. 멀리서 한국 뉴스를 매일 같이 볼 수는 없지만 소식을 끊지 않고 보려고 하는 편이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많은 정치 현안을 보며 바뀌지 않는 현실이 항상 마음 아프고 답답하다. 이번 국정교과서 건도 그렇다.

답답한 마음에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프랑스 친구에게 교육부에서 학교가 좌편향 교과서만 선택하여 가르친다고 교과서를 하나로 만들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놀란 표정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나는 덧붙였다. 그 결정을 한 현 대통령은 60-70년대 독재 정치를 하던 독재자의 딸이라고. 더더욱 앞으로 만들어질 교과서에 대한 공신성이 떨어지게 될 것을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 않느냐고.

그는 자신도 중․고등학교 때 프랑스에서 60년대 샤를르 드골이 집권하던 시절에 파리와 파리 근교에 살던 알제리인들이 길거리에 나와 목숨을 걸고 시위했던 사실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고, 아버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에서는 알제리 이민자들에게 통금시간을 적용하여 자유를 억압하였다. 그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고, 프랑스 정부와 경찰은 이민자들을 학살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 친구는 그 이후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내막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작년 프랑스 수능 시험인 바깔로레아(Baccalaureat)에 나왔던 철학 문제 하나가 생각났다.

“정치는 진실의 요구를 피하는가? La politique échappe-t-elle à l’exgience de vérité?”
정치 운영의 실용성이나 국익이라는 명목 하에서 진실은 왜곡되거나 축소되는 일들이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11월 2일 국정교과서가 확정고시되었다. 필자도 먼 프랑스에서 교육부에 반대의견을 보냈다. 그러나 32만 명의 국민이 반대의견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의견은 수렴되지 않았다. 이런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숨길 수가 없다. 많은 국민이 반대하고 있음에도 국정교과서가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와 여당이 말하는 올바른 역사관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

지난 10월 31일, 파리에서 프랑스 거주 한인들에게 정보와 소식을 전하는 한 업체와 한불 문화교류협회에서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차세대 프레젠테이션 대회가 열렸다.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유, 글로벌 리더는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 등으로 발표가 이루어졌다. 주프랑스 한국대사도 참석하여 축사를 하며 행사를 지지해주었다. 대부분은 한글의 우수성이나 한류에 대한 주제였고, 한국의 ‘긍정적’인 부분을 예로 들어 발표했다. 대체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 스타, 음악인, 혹은 기업 그리고 한류였다.

그렇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듯 한국은 단시간에 경제 성장을 이룬 유일한 나라다.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은 학문적으로 아직도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경제적, 자본주의적 성공 프레임이 근본적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민족성을 논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사회의 체제와 이념을 넘는 그야말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필자는 고등학교 첫 검인정 역사교과서 세대로 한국근현대사를 배웠다. 예전에는 ‘빨갱이’라 하여 가르치지 못했던 근현대사의 진실들을 배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감격스러운 일이었고, 교사들도 열정을 다해서 가르쳤으며 배우는 학생들도 즐겁게 배웠다. 검인정 교과서는 독재적 사관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성취로 의미가 있으나 사실상 교육의 현장은 한계가 있었다. 더 건설적이고 바른 교육을 하고 싶어도 좋은 성적을 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부모들의 욕심을 교사들도 무시할 수 없는 터이고, 학교와 교육부를 무시할 수도 없는 터이다. 또한 학생들은 교사들로부터 고등학교 3년 내내 진로에 대한 탐색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은 상태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기를 조언받고 무조건 대학에 가기를 조언 받았다.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다면 모든 것이 정당화 되어버리는 물질만능주의적 사고와 수직적 위계질서 교육은 한계를 벗지 못했다. 당시 불합리한 일이나 불의한 일이 자행되어도 우리, 아니 적어도 나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라는 논리로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사회를 학습하고 있었다.

세월호...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우리 아픔의 상징이다. 세월호 사건은 어른으로서 우리가 지금까지 이끌어온 한국 사회에 대한 반성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자신보다 높고 강한 존재에 복종하는 어른을 아이들에게 답습하게 하였고, 우리도 그 사회에 희생자이며 또 다른 희생자를 낳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 누구나 다양한 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배울 자유가 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교과서를 넘어 또 한 국가라는 한계를 넘어 세계 시민으로서 배워야 할 참 교육이 필요하다. 한 민족 혹은 한 국가라는 테두리에 갇히는 배타성의 한계를 넘어 삶이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질문하게 해야 한다. 한 인간으로서 지금 자리에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 다른 문화와 지역에 있는 이들이 있음을 인식하고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한국 사람을 넘어 지구에 공존하는 모두가 행복하기 위함임을 믿기 때문이다.
 
허린(프랑스 유학중)

 In순천∙순천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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