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점 반』/ 윤석중 시, 이영경 그림 / 창비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넉 점 반』은 친근한 그림과 우리말의 리듬감이 살아있어, 보고 있으면 기분이 경쾌해지고 따뜻해지는 시그림책이다. 넉 점 반, 넉 점 반...우물거리다보면 책 속의 아이가 되어 길을 나선다.

아이가 가겟집에 심부름을 갔다가 우연한 만남이 이어지면서 예상치 않은 여행을 하게 된다. 심부름을 시킨 엄마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즐겁기는커녕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심부름 보낸 아이가 돌아오지 않으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할테고, 무사히 돌아온 아이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어이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면 이야기는 완전 새롭다.

 

가겟집 영감님한테 시간을 물어보고 집으로 가려던 아이는 세숫대야 위에서 물 먹고 있는 닭을 본다. 신기
한 눈길로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 옆으로 개미 한 마리가 오더니 곧 줄줄이 몰려와서 닭장 옆에 떨어진 모이를 들고 가는 것이 아닌가! 행진하는 개미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내려다보며 따라가다가 개미들이 멈춰서자 무슨 일인가 하고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갖다 댄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잠자리가 모이를 낚아채 가자 이번에는 잠자리를 따라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잠자리가 분꽃 위에 앉으니 분꽃이 눈에 들어와 분꽃에 온 마음을 빼앗긴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눈길이 머무는 것마다 세상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신기한지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다. 새로운 것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설레고 기뻤을까? 아이 자신이 너무나 신기하고 궁금해서 몰입했기 때문에 그 관심사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으로 이어졌다. 닭을 보고 있던 아이가 분꽃 동산에서 노래 부르며 실컷 놀게 될 것을 누가 상상하겠는가? 누군가 이렇게 긴 여정을 다녀오라고 시켰으면 아이는 신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목에서 보듯 네 시 반에 시간을 물어보고 가겟집을 나선 아이가 해가 질 때까지 신나는 모험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만의 시간을 충분히 누린 자의 여유랄까 아이의 표정에 당당함과 기쁨이 묻어난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하라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참으며 지낸다면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것들이다.

아이가 만난 것들은 아이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아니다. 더욱이 가겟집과 아이의 집은 이웃이다. 먼 여행길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새롭게 보일 때,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만나게 된 순간, 우리에게도 새로운 세계는 열릴 것이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풀꽃에게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고 말하는 나태주 시인의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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