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배선의 걸으면서 배우는 조계산(1)

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올 6월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조계산이란 이름은 송광사와 선암사, 즉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조계’라고 하면 불교의 한 종파인 조계종을 떠올린다. 조계종은 고려시대에 신라의 구산선문을 통합한 한 종파이고, 조계산의 원류는 중국의 당나라에서 왔다고 ‘승평속지 2권’과 ‘송광사지’가 말해주고 있다.

『신라문무왕 원년(661) 중국의 대감선사가 당나라 불교의 제6조 조종이 되어 황제로부터 누른 매화나무 인장을 받아 허리에 차고 쓸쓸하게 황금지팡이를 앞세우며 영남지방의 소조부 조씨 마을에 이르렀을 때, 그 마을의 촌장인 조서량과 마을사람들이 평상시 대사님의 덕을 흠모하였던 터라 반갑게 맞이하여 가까운 쌍봉산 큰 골짜기에 수나라 말에 전쟁으로 불타 폐허가 되어 있는 보림의 옛 절터(계림)에 절을 세우고 스님을 모시니 머지않아 많은 스님들이 모여들어 큰절이 되었다

대사님이 계신지 아홉 달 가량 되었을 때 떠나시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산의 이름을 조서량의 ‘조’와 쌍계의 ‘계’를 한자씩 따서 ‘조계’라 지으니 이것이 중국의 조계가 태어난 유래라고 전해오고 있다』

그곳은 지금의 곡강현의 동남쪽 약 12km 지점인 광동성과 호남성의 경계에 있는 커다란 산줄기 남쪽 쌍봉(산) 밑 골짜기에 있다.

그럼 순천의 조계산은 어떤 경로를 거쳐 이름으로 자리잡았을까? 조계산은 선암사 쪽과 송광사 쪽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두 사찰과 산의 이름의 변천을 살펴보면 송광사는 효령봉(연산봉)을 주산으로 송광산-길상사(신라), 송광산-수선사(고려), 조계산-송광사(조선)라 하였고, 선암사는 장군봉을 주산으로 청량산-해천사, 청량산-선암사, 조계산-선암사로 변해왔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 병정봉에서 바라본 조계산의 장군봉과 연산봉

‘송광사지’ 보조국사비명에 의하면 1204년 보조국사가 길상사 터에 수선사를 중창하고 정혜 결사를 펼치게 됨에 평소부터 그의 도를 중히 여겼던 고려 ‘희종’이 즉위하여 조계산 수선사라는 글씨(편액)를 써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선암사 사적비(사적비명명서)에는 고려 고종 때(1214~1259) “대각국사가 중창하고 산의 이름을 조계산으로 바꾸고 구역에 선원을 세워 조계종을 존중하였다”다고 새기고 있으나 대각국사 생존 시기(1055~1101)와 차이가 있다.

▲ 송광사 현판
▲ 선암사 현판

‘선암사 사적비’의 건립시기가 1921년으로 후대에 구전의 기록이라 하여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므로 조사와 연구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조계’는 단순히 한 종파를 상징하는 단어가 아니라 고려 불교를 선도하는 중국불교의 절대 선각자(6조 혜능)가 활동하던 곳이므로 현재와 같은 종파의 개념이 아닌 당시로서는 당연히 모든 승려들에게 성지로 인식되던 시대 상황이었으므로 보조국사가 ‘수선사’를 세우고 희종으로부터 편액을 받을 때 왕이 산과 절의 이름을 직접 지었을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고, 수선사 측(보조국사)에서 지어 올릴 때 당시 불교의 으뜸 단어인 ‘조계’를 선택한 것은 극히 당연한 사실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계’는 반드시 주산의 대명을 앞세워 자연(神 )앞에 몸을 낮추는 순리와 산과 절의 이름의 조화를 좇아 자연스럽게 두 절의 주산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송광사지의 조계산 이름 내역 원문

『당나라의 고종(高宗) 용삭원년(龍朔元年) 신유(辛酉)년(신라문무왕원년 661)에 대감(혜능)선사가 6조를 제수(除授)하여 황매법인(黃梅法印)을 받아 전패(傳佩)하고 표연(飄然)히 금책(金策)을 던져서 영남의 소조부 조후촌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 살고 있던 조서량(曹叙良)이 스님의 덕을 흠모하여 인근에 있는 수말(隋末)의 병화(兵火)로 폐허가 된 쌍계(雙峯大溪)의 보림(寶林) 고사(古寺)터에 범찰(梵刹)을 세우고 대사님을 모시니 은성(殷盛)한 보방(寶坊)이 되었다.
 
 9개월 가량을 주석하고 나서 떠나면서 시은(施恩)하기 위하여 조숙량의 성
‘조’와 쌍계의 ‘계’를 따서 산의 이름을 지으니 이것이 중국 조계산의 유래이다』
 
송광사지의 주요 명칭과 모순점

대감선사: 인도불교의 제28대 조종으로 중국으로 넘어와 제1조가 된 중국선종의 창시자 달마대사 이후 제6조가 된 혜능선사의 다른 이름, 대감혜능(大鑑慧能)이라고도 함, 한국의 선종도 혜능의 법맥을 잇고 있다.
황매: 혜능이 맨 처음 불교에 뜻을 두고 제5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찾아가 노역으로 수련을 시작하던 곳의 지명인 중국 치저우(祁州)의 황메이(黃梅), 5조 홍인대사가 살던 곳이라 하여 홍인대사를 부르는 다른 이름.

보림사: 혜능이 의법(依法)과 계(戒)를 받은 후(677) 수행을 하던 사오저우(韶州) 차오치(曹溪)에 있는 절.

위 글은 혜능선사의 행적을 중심으로 구성하였으나 6조는 중국선종에서 법통을 잇는 불교의 세 순으로 황제의 제수와는 관련이 없다 황매가 5조 홍인대사가 있는 곳의 지명임과 동시에 홍인대사의 다른 이름이므로 황매(이)에서 홍인대사로부터 법인을 인수받아 허리에 차고 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전설에 황제를 등장시킨 것은 내용을 부풀리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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