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 터 ┃ 뷰 - 순천중앙신협 라갑주 이사장

 
- 신협운동의 목표는 뭔가요?
신협운동을 통해 지역사회가 훈훈해져야죠. 문제가 생기면 조합에 와서 상담하고,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든든한 빽이 되어야 해요. 신협운동은 경제운동이면서 하나의 사회운동이에요. YMCA연맹에서는 민주주의 의식을 고취시키려고 신협운동을 채택한 거예요. 의식화의 통로로 삼은 거죠. 민주적으로 의견을 발표하고 회의하다보면 저절로 역량이 커지잖아요.

- 신협운동 초창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초기에는 변하는 사람들 때문에 몇 번이나 포기할 뻔 했지요. 맨 처음 신협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자전거를 타고 업체를 방문해서 출자금을 받으러 다녔어요. 하루에 천 원씩 받았어요. 천 원 정도야 쉽게 맡겼지요. 당시 신협이 인가도 받지 않은 상황이고, 불안한 상황이라 어떤 취지에서 신협운동이 시작되었는지 입이 아프게 설명하러 다녔어요. 마음이 통한 사람은 하루에 만 원씩 적금을 넣었어요. 저희가 하루하루 고객들의 심부름을 한 거지요. 석 달 동안 적금을 찍으면 대출을 해주었습니다. 당시 은행에서 서민들은 대출이 안 되었어요. 돈만 있으면 돈을 버는 시절이었지요. 대출을 받기 위해 예금도 하고, 적금도 하더군요. 그 후 재무부 인가를 받고나서는 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어요.

- 중간에 어려운 시기는 없었나요?
조합원이 돈을 찾으러 오면 내줘야하는데 대출 다 해버려서 보유한 현금이 없으니 쩔쩔맨 적이 있었죠. 다른 조합원에게 돈을 조달하고(아이고 그때는...). IMF 때는 연체율 줄이기 위해 밤샘근무도 했어요. 연체율 줄인 곳은 살아남고, 못 줄인 곳은 문을 닫았어요. 사업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IMF때 비교적 큰 조합이었던 밀알신협, 한고을 신협, 남부 신협이 퇴출되었어요. 당시 서민들 대출금이 연체되는 경우가 많았고, 대출금이 회수가 안 되었어요. 충당할 비용이 쌓여야 하는데, 자기자본이 고갈된 거지요. 자기자본이 일정기준 이하가 되면 영업이 정지됩니다.

- 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동력은 뭐였나요?
조합원과 임직원간의 믿음이죠. IMF 터져도 돈을 찾아가는 조합원이 적었습니다. 조합이 정직하게 한다고 믿으니 맡겨둔 거지요. 그것 때문에 살아난 겁니다. 불안하다고 예금 찾아가면 바로 나빠집니다. 해마다 조합원 야유회도 가고 재미있게 했어요. 은행에서는 그런 것 안하잖아요. 야유회 때 맛있는 음식 해서 놀고, 총회 때 결산보고도 하고 예산안도 조합원이 통과시켜야 가능합니다. 그렇게 민주적으로 운영하다보면 주인의식이 생기지요. 신협 돈이 내 돈이라는 애착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 것을 경험하면서 서로서로“너도 해라”권하며 조합원이 늘어났어요. 조합원간 신뢰가 쌓이고 친교가 잘 되다보니 산악회, 축구회, 오카리나팀, 노래교실 등 동호회가 많이 만들어져 자율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 신협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분들이 생기면서 재미난 이야기가 많겠어요.
초창기에는 신협 덕분에 자립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때는 서민에게 대출을 안 해줄 때였는데 신협이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신용만으로 500만원 대출받기는 어려운 일이었어요. 우리는 운동성 하나 보고 한 거예요. 신협은 보증제도가 없습니다. 신협 조합원이면 믿고 대출을 해줘요. 신협 통장만 가지면 다 대출 받을 수 있어요. 가끔 잘못되는 경우가 있지만 자기 신용을 지키기 위해서도 잘 갚으려고 합니다. 지금도 신협 때문에 경제적인 안정을 찾았다고 고마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고 협동조합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조언해 주신다면?
협동조합은 사람중심이거든요. 신협도 돈이 중심이 아닙니다. 여기는 출자금을 많이 내든 적게 내든 1인 1표입니다. 예금을 많이 한다고 해서 대우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평등한 대우를 받아요. 인격체들끼리의 모임인 거지요. 참여하는 사람들끼리 소통이 잘 되어야 하고 재미있게 해야 성공합니다. 모이는 재미, 일하는 재미가 앞서가야지 뜻만 앞세우면 어렵습니다. 협동조합은 사람들끼리 협동을 잘 해야 합니다. 협동만 잘하면 손실이 나도 이해가 되고 함께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서민에게는 대출이 안 되던 그때 그 시절
1979년 순천중앙신용협동조합이 시작되었다

 
중앙동 성동초등학교 근처에 1979년 7월 19일 순천YMCA가 창립된 직후 YMCA 회원들이 서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순천YMCA신협으로 창립한 순천중앙신협이 있다. 순천중앙신협은 2012년 12월 31일 현재 조합원 1만5천명에 자산 100억원으로 3개의 지점과 본점 24명의 직원이 있다.

신협운동은 1849년 독일에서 라이파이젠이라는 사람에 의해 자조, 자립, 협동운동으로 시작되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은 실업자와 고리채로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 운동은 북미를 거쳐 전 세계로 전파, 세계 87개국에서 신협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 5월 1일 미국인 수녀 메리가별은 우리나라가 원조물자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고, 자립정신을 길러줄 목적으로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소개했고 최초로 부산 성가신협이 탄생했다. 신협은“1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1인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으로 서민들이 푼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해서 이용하게 함으로써 경제적 자립을 돕는 운동으로 많은 서민들에게 희망의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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