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규
 전라남도청소년
미래재단 원장
‘기억이 나를 만든다’는 한 심리학자의 말에 새삼 공감이 간다. 기억은 이 세상이라는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달라지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사건과 장소에 대한 기억은 우리가 자아를 감지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은 한다.

요사이 불붙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과 그에 대한 반발을 보면서 청년 시절 필자의 의지를 세우게 한 1974년 국정 국사 교과서 때를 되새겨본다.

필자가 어린 초등학교 때, 하루 종일 혁명공약이란 것을 외우도록 강요받으며 5.16쿠데타를 맞았다. 박정희가 농촌사회에 신화적인 대통령이 되었는데, 고등학생 때엔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 후보와 접전하는 걸 봤다. 대학생이 된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이 내려지고 대학은 군인들 차지였다. 유신독재 시대. 고등학교와 대학의 학생회도 학도호국단이라고 하여 병영체제로 움직였다.

민주주의를 꿈으로 갈망하며, 인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 몸부림하던 때. 아, 신문이나 보는 정도의 스무 살 청년으로서 숨도 쉬기 어렵던 폭압의 시대!

그 1974년 국정 국사 교과서가 학교에 보급되었다. 오늘 같은 반대의 물결도 없이. 그래도 「창작과 비평」에 국정 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이 특집으로 실렸었다. 강만길, 이우성 교수 등의 글을 읽은 필자는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숱한 역사의 왜곡이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되는 것은 고려시대 무신란이 무인집권시대로 치장되었고, 천민의 난은 삭제되었으며, 3.1운동과 독립운동은 대폭 축소되었다는 것 등이다. 그러한 잘못을 알게 된 필자는 역사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독재정권이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역사 공부!

곧 완도의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되어 현장 교육연구를 국사분과로 하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했다. 교육연구가 승진 점수 확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만두고, 완도의 인물 장보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학문적인 탐구로 삼은 장보고 논문을 원고지 200장 분량으로 작성하여 1979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했다.

당시 거의 모든 학교마다 이순신상이 들어서 있었다. 박정희가 성웅으로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순신의 업적은 훌륭하지만 청소년들이 존경할 유일한 역사적 인물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순신에 맞서는 해양의 인물로 장보고를 내세웠던 것이다.

그 뒤로 필자는 국어교사가 되었고, 1989년 해직 이후는 시민운동가로서 활동했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그래서 가끔 ‘박정희의 역사 왜곡이 나를 역사 공부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강산이 변하길 서너 차례. 우리 사회는 참으로 많이 달라졌고, 민주화 이후의 세계적인 역할이 커졌다. 검정제 국사 교과서는 중학교 9종, 고등학교 8종이며 어느 교과서든지 선택하여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이 보장되었다. 이것을 폐지하고 국정화 단일 교과서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의 판박이로 보일 수밖에. 우리들의 시대가 불행하여 반면교사도 삼았던 전철을 미래의 청소년에게 물려주다니!

한 때 실증주의 역사학은 객관적인 역사를 추구했지만, 헤아릴 수 없는 사료를 선택하고 기술하고 해석하는데 주관성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하나의 역사 교과서는 올바른 역사 탐구의 포기와 마찬가지다. 한 정권이 역사를 독점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부정이다.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도 침해하는 것이다. 더욱이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반면교사나 삼으라고 나쁜 기억을 새기게 해서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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