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학섭
대대교회 목사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여성은 하루 2만 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남성은 여성만큼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하는 능력을 창조주로부터 동등하게 선물로 받았다. 말이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 마디의 말 때문에 인생을 포기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마디 격려의 말 때문에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고 새로운 인생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어릴 때 부모로부터 따뜻한 말을 많이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래도 아버지로부터 들은 한 마디가 평생 떠나지 않았다. “넌 커서 큰 권세를 얻게 될 사람이란다”는 말씀이다. 높은 권세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작은 모임의 리더역할만 맡아도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을 떠올리곤 한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랑이 담긴 언어를 먹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로부터 부드럽고 친절한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겉만 좋은 언어가 아니라 영혼이 담겨 있는 언어를 들어야 한다. 어떤 말을 듣고 자라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고 인격의 색깔이 달라진다. 아이들은 마땅히 사랑이 듬뿍 담긴 언어를 듣고 자라야 할 권리가 있다. 사랑과 진심이 담긴 말을 많이 들어야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의 언어는 한 마디로 과격하다. 무심코 길을 걷다가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아이들의 욕설이다. 한 교육방송에서 학생들 욕의 사용빈도를 방송한 내용을 보았다.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스스럼없이 욕을 내뱉는 것을 발견하였다. 놀라운 것은 욕하는 학생들이 문제아나 불량학생이 아닌 평범한 학생이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욕을 나쁜 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욕을 해야 친밀감이 높아진다고 여기니 걱정스럽다.

욕 잘하는 아이들이 문제는 어른들의 문제다. 언젠가 유치원 선생님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데, “할머니들과 함께 사는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보다 말이 거칠고 욕설도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인터넷도 한 몫을 한다. 검색에 능통한 아이들은 누리꾼이 내뱉은 나쁜 말들을 여과 없이 실시간으로 보고 배운다. 그래서 아이들의 문제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다 해도 고운 말만 하고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좋은 말 배우는 일은 더디어도 나쁜 말은 신속하게 잘 배우는 본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 같은 성군도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했다. 고운 말을 하는 힘은 자신의 의지만으로도 부족하니 위로부터 오는 도움을 구한 것이다. 고운 말을 하며 살고 싶다면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성경의 교훈을 새겨야 한다. 이는 남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이 필요하고, 내가 말을 할 때는 한 템포 늦추어 생각한 후에 하라는 뜻이다.

혀는 불과 같다. 한 마디 말의 실수로 정치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한 마디 말로 형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말이란 잘만 사용하면 그 능력이 무한하다. 한 마디의 격려와 칭찬이 돈 주고 얻지 못하는 용기와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마크 트웨인은 “나는 한 마디의 격려의 말을 들으면 두 달을 기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솔로몬의 잠언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는 말도 있다.

기왕 하는 말인데 가시 돋친 말, 폭력적인 말, 불평하는 말 보다는 정직한 말, 부드러운 말, 양념과 같이 맛있는 말, 경우에 합당한 말, 치유가 되는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원에 심어진 꽃과 나무는 마음을 순화하는 기능이 있다. 정원을 품고 사는 우리는 언어도 아름답게 사용해야 한다. 고운 말 한 마디가 도시의 품격을 높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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