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근혜
더드림실버타운 대표
추석이 지나고 나니 가을느낌이 완연하다. 나무들은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을 달성하려는 듯 열매를 거둬들인 이후 나뭇잎을 하나 둘 떨어뜨리고 있다. 곧 온 산이 울긋불긋 물들어 사람의 발걸음을 불러들이겠지. 그렇게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나무를 보면서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해 본다.

노인시설의 특성상 같이 생활하던 노인을 다음 세상으로 보내드려야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상 업무 중 하나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그 모습은 다양하다. 나무처럼 자신의 몫을 다하고 아름답게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은 이들에게 상처만 남기거나 뒤가 복잡한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잘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잘 죽는 일이 아닌가 싶다.

수많은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떠난 사람의 뒤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을 몇 명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곱분님(가명)의 아들이었다. 젊은 시절 막걸리 한 사발 드시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던 곱분님은 우리 복지시설에서 가장 흥이 많은 사람이었다. 장구만 치면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이이있다아~”

노래를 부르며 어깨춤을 들썩이던 곱분님은 천진한 웃음이 무척 예쁜 사람이었다. 연세가 들수록 다리에 힘이 없어 화장실에 혼자 가지 못했고, 점점 용변을 기저귀에 의지해 처리해야 했다. 간혹 기저귀를 갈러 방에 들어가면 옷을 벗지 않으려고 주먹까지 휘두르며

“이년아, 네가 뭔데 옷을 벗겨. 저리가 이년아”

하고 악을 쓰다가도

“홍도야~ 우지마라~~아글씨~ 오빠가 있~다앙께~~”

불러주면 누워서도 웃으며 손을 흔들곤 하였다. 기분이 좋아진 틈을 타 얼른 기저귀를 갈아주면 그제서야
“고맙습니다. 아따 좋네. 고맙습니다”를 연신 읊어대셨던 사람이다.

우리 복지시설은 요양과 양로를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양로어르신들만 계시던 때라 우리 시설에서 더 이상 생활할 수 없게 되어 곱분님은 병원으로 옮겨가셨다. 그리고 몇 달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아들이 시설로 찾아왔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제가 모실 수 없어 시설에 모셔놓고 맘이 늘 불편했는데, 어머니가 여기 계시는 동안 정말 마음이 편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러더니 직원 수만큼 준비해온 양말을 선물로 주며 작은 거라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 아들도 울고 나도 울었다. 이제 익숙해 질만도 한데 어찌 이리도 죽음 앞에서는 늘 눈물이 앞서는지...
함께 녹차를 나누며 어머니를 추억했다. “어머니가 병원으로 옮겨가신 후 함묵증이 와서 병실에 있는 사람이나 의료진에게도 말씀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어요. 마지막까지 이곳에서 계셨더라면 덜 힘드셨을지도 모르는데....”

어머니의 천진스럽던 웃음과 장난끼, 덩실덩실 추던 춤과 목청 좋은 노랫소리를 되새기며 그리 떠나신 것을 아쉬워하였다. 장례를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아 정신이 없었을 텐데 시설을 찾아와 감사를 표하고 함께 울고 웃는 시간을 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시간을 내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내는 일이다. 떠난 사람이 머물던 곳을 대신 돌아보며 그분의 삶을 함께 추억하는 일,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을 드러내는 일, 사는 동안 그분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일인 것이다. 삶이 끝나는 날, 떠난 분은 말없이 가시더라도 이렇게 그 뒤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삶이 더 빛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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