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논설위원
세월호를 얘기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8월 16일처럼 9월 16일에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순천시민의 모임]은 다시 모였다. 작년 9월 16일부터 매월 16일에 빠지지 않고 만남을 이어온 지 1년째다. 순천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가 연향동 국민은행 앞에서 시작한 촛불집회는 매주 목요일 저녁 전교조 선생님들이 이어오고 있다. 작년 11월 창립 이후 매월 첫 번째 목요일에는 [세월호 가르침으로 3년! 삶을 위한 304인회]가 모인다. 한 주부의 일인 시위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찾지 못했다. 그럴 때일수록 고민을 나누고 서로의 다양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얘기하다 보면 다른 생각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구체화할 수 있으며, 이것이 사태의 해결만큼 중요한 일이다. 세월호 사태 또한 결국 사람 사이에서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일어났고 순천에서도 ‘잊지 말자. 기억하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태 초기에 한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많았다. 이는 철면피한 국가, 무능한 공권력, 이해집단으로 변질된 관료 체계, 앵무새가 되어버린 언론, 각자도생의 저급한 문화 수준 등이 드러난 ‘한국의 민얼굴’이라는 진단이었다. 또한, 그 말에는 화장을 지운 민얼굴을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시민의 주체적 다짐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진도 팽목항과 서울 광화문, 안산 단원고 등에 쏠리던 마음은 차츰 시간이 흐르고 몰염치한 정부, 전방위적인 악질적 여론몰이와 생활 전선의 절박함, 주류 언론의 외면 등으로 점점 가라앉았다. 참사 100일이 지나면서 <순천YMCA>를 중심으로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지역 내 뜻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순천시민의 모임]이 결성되고, 매월 16일 저녁 7시에 어떤 때는 찻집에서, 어떤 달은 거리와 공원에서 만남을 이어왔다.

이번 9월 16일에는 유가족과의 만남을 준비했다. 우리는 만남이 필요하다. 작년 ‘416’ 이후 지금까지 계속 세월호 참사를 덮고 그 이전과 이후를 똑같게 하려는 시도가 만만치 않다. 이러한 술책은 세월호 참사를 유가족만의 일, 안산시 단원고만의 일, 불순한 정치 집단의 일로‘분리’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정책을 무너뜨리는 길은 서로서로 다양한 만남을 갖고 자신이 세월호 참사와 떨어질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되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분리술책에 휘둘리지 말아야
 다양한 만남이 중요


▲ 고 권오천군
단원고 2학년 4반
다양한 만남의 하나로 단원고 2학년 4반 고 권오천군의 형 권오현씨를 초대하여 지금의 상황과 유가족의 생활,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었다. 그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지금 조사하고 있지 않다. 시행령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위원장이 승낙하면 조사할 수 있는데 여당 인사라 안 한다”며, 지금대로라면 현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속 시원히 밝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지금 유가족들은 동거차도에서 움막 생활을 하고 있다. 망원경으로 인양 준비 상황을 직접 보고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선박명이나 그 어떤 명칭도 표시하지 않은 소속 없는 배들이 왔다 갔다 한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유가족은 ‘차라리 우리가 바지선을 사자. 이미 정부에서 세월호에는 뚫지 않겠다는 구멍이 하나 생겼다. 자꾸 뚫고 있다가는 선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고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다. 실종자들을 수습하기 위해서나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라도 온전한 인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실종자가 있으므로 추모사업은 진행할 수 없다’며 가장 절박한 사람은 실종자 가족들이고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수습책을 촉구했다. 또한, 사고를 겪은 단원고 학생들이 내년에 졸업하므로 교실을 어찌해야 할지도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 전했다.

 
지금까지는 보험회사에서 지난해 10월에 지급한 여행자보험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직도 전국 각 지역에서 특산품을 보내주고 계시고, 적십자사에서 점심을 제공해 주신다며 고마워했다. 정부는 유가족들에게 배보상을 위해 9월 28일까지 동의서를 제출하라고 한다. 그런데 동의한 이후에는 정부에게 어떠한 방법으로도 항의할 수 없으므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여 그 기한을 연장하려 한다.

지금은 슬픔, 연민 등의 감정으로 국민에게 호소할 때는 지났으며, 감정이 아닌 논리로 다가가기 위한 방안을 하나씩 마련하는 과정이다. 자기 자신은 앞으로 팽목항에서부터 1,000km를 두 발만으로 걸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가수 김범수씨와 함께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콘서트를 하면서 전국을 돌 예정이다.

그는 정말 아끼던 동생을 잃고, 가족대책위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다. 간암으로 사망한 아버지는 87년 6월 항쟁 때 열심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 본인이 이뤄놓은 소유물을 잃지 않으려고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런데 자기 동생의 죽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며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밝혔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기억하고 지키고 있는 여러분이 고맙습니다. 물질적인 도움만이 힘이 되는 것이 아니고,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힘이 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 참 힘드네요. 하지만 뭐라도 만들려고 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받아 한 여중 1학년 학생이 “지금은 바뀌지 않아도, 무신경한 사람들에 아파하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주세요”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잊어버리라고, 이제 됐다, 그만하라는 말들에 연연하지 않고, 세
월호의 진실과 함께 꿋꿋하게 살리라는 다짐으로 들렸다.


 “지금은 바뀌지 않아도,
    무신경한 사람들에 아파하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주세요.”


‘세월호 피로감’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무엇을 했기에 피곤한 걸까? 가만히 보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한 사람’이 아니라, 예전의 관성대로 그저 그렇게 살고자 하는 데 바뀌려는 사회를 ‘지켜보기 귀찮은 자’인 것 같다. 그런 ‘귀차니즘’은 광주, 강정, 밀양을 지나 진도를 거쳐 결국 내 집 앞으로 재앙을 인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작지만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함께하는 ‘연대와 실천’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 매월 16일 마다 열리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순천시민의 모임]이 9월 16일에는 유가족 권오현씨를 초청하여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순천시민의 모임]에서 계획하는 내달 10월 17일(토) 안산기행에 참여하는 것도 세월호의 ‘진실’에 다가서는 한 방법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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