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현
순천여고 교사,
순천대 강사
풍수나 사주, 관상이나 점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풍수설을 믿고 사주, 관상을 본다. 보고 믿는 것을 넘어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3년 ‘관상’이란 영화는 90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렇게 풍수 사주 관상 등이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예전부터 전해져 온 유구한 민속과 풍토가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다음으로 잘못된 경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개인의 삶이 불안하고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있다. 여기서는 풍수에 국한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

풍수가 부귀영화를 주는가?
풍수설에서는 조상을 명당에 모시면 무병장수하고 자손이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주장한다. 풍수가 과연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줄 수 있는가? 근래에 읽은 풍수와 관련된 2편의 글이 생각났다. 부산대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가 쓴 <풍수와 점>이라는 글과 한국고전번역원 정선용 수석연구위원이 쓴 <무덤 속의 뼈가 어찌 사람에게 복을 주랴>라는 글이다. 두 글에서는 복을 받기 위해 명당을 찾는 세태를 통렬히 비판한 실학자 안정복, 박제가, 정약용과 임란 때 진주(晉州)에서 순절한 김성일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안정복은 ‘복 있는 사람이 길지를 만난다’는 속담을 소개하는데, 복 받을 땅을 찾지 말고 복 받을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들렸다. 박제가는 “장수­단명, 출세­불출세, 흥망, 빈부는 나름의 이치가 있는 것이지, 사람을 어디에 묻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풍수론을 비판했다. 정약용은 “말라비틀어진 무덤 속의 뼈가 제아무리 산하(山河)의 좋은 형세를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자기의 후손을 잘 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질타했다. 풍수설의 이론적 근거인 ‘동기감응설’을 부정하는 말이다. 김성일은 “풍수 책을 모조리 다 태워 없애 천하에 상 치르는 어려움을 없게”하고 싶다는 시를 남겼다. 이 밖에 풍수설을 비판하는 이론과 근거는 차고 넘친다.

주체적 의지 부인하는 풍수설
그러나 풍수설을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비판이 못마땅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비판을 반박할 다양한 이론과 반론, 반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들은 대부분 오비이락이거나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 결과에다 원인을 꿰맞추는 결과론적 견강부회의 혐의가 짙다. 무엇보다 풍수설은 인간의 주체적 의지를 부정하는 환경(지리)결정론이다. 우리 삶은 부모의 유전(遺傳), 자기 의지와 결정, 경제력, 자연 환경, 주변 사람, 사회구조나 제도, 우연 등 매우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루어진다.

과학적, 합리적 사고체계 아니다
나는 풍수나 사주 등을 과학이나 이성, 합리적 사고 체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속이나 관습, 차라리 종교라고 부르는 게 낫다고 본다.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땅기운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노력, 성실함, 책임감, 판단력 같은 것이 아닐까. 불성실한 삶, 무책임한 삶, 나쁜 마음을 먹고 악을 행하는 삶을 살면서도 조상의 뼈를 명당에만 묻으면 복을 받을 수 있는가.

풍수설에 휘둘려서는 안 돼
천만 번 양보하여 풍수설이 맞다 해도 풍수로 인한 이익의 대부분은 기득권자나 돈 많은 사람들이 차지한다. 그렇다면 지관들은 본의 아니게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반사회적인 활동을 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유전자 복제로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는 21세기에 많은 사람들이 풍수설을 전부든 일부든 묵인한다는 것이다. 지관의 말이나 심신이 미약한(神氣가 있다는) 사람의 말[占] 한마디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현명한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차라리 이웃과 소주 한잔을
맹자는 “천시(天時)보다 지리(地利), 지리보다 인화(人和)”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풍수 등에 마음을 빼앗길 여유가 있으면 차라리 그 시간에 이웃과 만나 막걸리 한잔 하는 게 더 낫다. 나는 이번 주에 그간 풍수나 점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지인에게 시원한 가을바람을 안주삼아 소주 한잔 하자고 전화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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