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철
순천효산고 교사, 시인
방학 중에 생일을 맞이한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최대호. 학생의 이름 공개할 수 있을 때 교사는 행복하다. 올해가 교직 마지막 해라 담임반이 아니어도 나와 문자를 나누거나 미션에 참여하면 생일시를 써주기로 했는데 대호는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대화에 응해주었다. 다음은 그동안 우리가 문자로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직업 같은 거 말고 어떤 인간이 되고 싶어?”

“선생님!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한여름 밤의 꿈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여러 사람의 기억에서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만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너다운 시적인 표현이구나. 한여름 밤의 꿈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사람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서,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추억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많은 사람과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함께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제 배운 팝송에 ‘당신에 대한 사랑은 진실이었어요!’라는 노랫말이 나오는데, 왜 굳이 진실이라는 말을 강조했을까?”

“그 순간만큼은 진실이 아니었을까요? 지나보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사랑이 진실이었다고 생각해요.”

“옳거니! 그런데 내 생각엔 이 사람은 진실한 사랑을 하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나 싶어. 난 진실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진실에 연습이 필요하면 그게 진실일까요? 전 사람을 대하는데 거짓이 없다면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난 그랬거든. 내가 사랑하는 아내조차도 때로는 사랑에 거짓이 스며든 적이 있었지. 그만큼 내가 덜 진실했기 때문인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 노력에 의해서 말이지. 인간의 사랑은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늘 진실이 깨어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지. 그 애씀이 날 감동시킨 거고 너에게도 이 노랫말을 언급한 거야.”

“사랑이 노력해야한다는 게 아직은 어색해요.”

“너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혹은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뭘까?”

“저는 부모님이에요.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면서 가장 슬프게도 하는 것 같아요.”

“모든 부모님이 그런 이중적인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항상 저를 먼저 생각해주시는 가장 소중한 분들이세요.”

“부모님들이야 다 그렇지.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데 넌 어린 나이에도 그걸 깨닫고 있으니 부모님이 너를 키우는 보람이 있으시겠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대호처럼 반듯하고 멋진 학생이 많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수많은 장점이 내 눈에 포착되기 시작한 것은 매 수업시간마다 눈을 맞추며 이름으로 출석을 부르고 난 뒤부터였다. 누가 결석했는지 그들의 부재를 확인하기 위해 부르던 출석이 하나하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출석으로 바뀌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오래 전 쪽지상담을 했을 때 한 아이가 “선생님은 문제아만 사랑하는 것 같아요!”라는 내용만 달랑 적어낸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뼈아픈 지적이 내겐 약이 되어준 셈이다. 대호에게 선물한 생일 시이다.

너를 읽었다!
레오 톨스토이를 읽듯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읽듯이!

괴테의 글을 읽었다고 하지 않고
괴테를 읽었다고 하는 것은
이 곧 사람인 까닭이지.
내 스마트폰에 깨알같이 새겨진
우리가 주고받은 수많은 문자들이
곧 너와 나의 뜨거운 삶이었듯이.
 
(…)

아, 그리고
몇 번이고 눈으로 읊조렸던 이 말!
꽃같이 아름다운 어머니 가게 일 도와드렸어요!

이런 곱고 아름다운 말들이
너의 달콤한 입술이 아닌
너의 진한 마음 한 복판에서 흘러나왔듯이.

넌 내게 이런 말도 했지.
진실에 연습이 필요하면 그게 진실일까요?
사랑을 노력해야한다는 게 아직은 어색해요.

하지만 넌 이미 알고 있지.
연습 없이 진정한 춤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단련된 진실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생일을 축하한다.
성실의 대명사에 뛰어난 춤꾼이기도 한
너의 열아홉 번째 멋진 춤사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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