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여수YMCA 사무총장
이번 호 원고 청탁 일이 광복 70돌 즈음이어서 자연스럽게 이 주제로 정하고 자판 앞에 앉았는데 이상스러우리만치 첫 문장이 써지질 않았다. 광복절하면 우선 해방의 감격, 희망 이런 단어가 떠올라야 하는데 심상이 그렇지만은 않았다.

갈피를 잃고 무심히 뉴스를 검색하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분신을 감행한 최현열 씨가 남긴 격문을 접하게 되었다. 그랬다. 우리에게 광복 70돌은 결코 환희에 찬 경축일이 아닌 격분과 통탄의 날로 돌아왔다. 이를 깨달은 바에야 이 지면은 아둔한 필자의 횡설수설보다도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팔순에 이른 그가 분신까지 해가면서 절규한 주장을 실어 마땅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최 씨는 항일운동으로 옥살이까지 한 선친의 영향을 받아 평상시 일본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리고 ‘광주전남근로정신대시민모임’ 회원으로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위로를 전하는 의로우면서도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분신과 함께 ‘칠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남긴 격문의 핵심은 이렇다.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간악하고 포악한 발굽 아래 짓밟혀 많은 서러움과 고통을 받고 살아왔는데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왜놈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뉘우칠 줄 모르고 있다”고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꾸짖고, 나아가 우리나라 위정자들도 질타한다. “광복이 되어 나라는 찾았어도 친일민족반역자들과 일제에 동조했던 부유층, 그리고 영어나 소련 글을 좀 배웠다는 친미·친소 주의자들은 각 분야에서 실권을 쥐고 거리를 떵떵거리며 활보하지만 정작 정상적인 한일관계는 하나도 해결해 놓은 것이 없다”.

반면에 “독립유공자의 자손들은 가난을 대물림받아 거리를 헤매고 있다”며 이렇게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원통하다고 절규한다.

이렇듯 최 씨의 문제의식과 비판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정확하다. 식민지배 반성 없는 아베 정권에 대해 독립운동가 후손이 항거한 것이다. 이런 일본 정부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고 오히려 끌려다니는 우리 정부와 정치권을 꾸짖은 것이다. 일제잔재청산을 못 한 결과 친일세력이 기득권을 점하고 의로운 민족주의 후손들이 피지배 사슬에 허덕이는 현실을 개탄한 것이다.

이러한데도 광복 70돌이 마냥 기쁜 날로 임시공휴일까지 더해 놀러 다니는데 바빴어야 하는 시국인지 되돌아봐 진다. 대통령의 친동생이 천황폐하 운운하며 일본비판까지 나무라는 나라에서 과연 독도는 지켜질 것이며 심지어 일본군대가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있는 것인지 회의감이 커진다.

신경 거슬리는 일본 쪽보다 우리 내부가 더 들여다봐 지는 것은 그래서다. 오죽했으면 분신이라는 극단까지 마음먹었을 독립운동가 후손의 심정을 우리는 진정 공감하고 있는가. 그러기에는 70년 세월이 너무 길고 먼 것인가. 세월호 슬픔 1년도 지겹다는 판인데 이제 그만 잊어야 하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자주독립 국가로 통일을 이루고 동북아 평화의 수호자로 번영하는 나라로 서고자 한다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36년 일제강점역사이다. 그리고 이후 이어진 광복 70년 세월에도 청산치 못한 일제 잔재와 일본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심판이 먼저다. 70주년 이날이 그 심판의 시발점이어야 한다.

우리의 광복 70년은 최현열 씨 인생 그 자체다. 그가 회생해야 진정한 광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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